东方红 · 1964.10

동방홍 (가무 서사시)

The East Is Red (song and dance epic)

1964년 10월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초연된 대형 음악 무용 서사시. 저우언라이가 총감독을 맡아 3천 명이 넘는 인원으로 5·4 운동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의 공산당 역사를 노래와 춤으로 펼쳤다. 1965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제목은 마오쩌둥을 기리는 노래 「동방홍」에서 왔다.

상세

무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한다는 서곡에 이어, 줄거리 없는 역사가 한 장면씩 펼쳐진다. 고난의 시대, 추수 봉기와 징강산, 장정, 항일전쟁, 장제스 왕조의 매장을 지나 1949년 “중국 인민이 일어섰다”까지. 혁명가 30여 곡과 춤 20여 편을 합창과 독창, 시 낭송으로 이었고, 민족 악대와 서양 관현악단이 함께 연주했다. 합창단만 천 명이 넘었고 무대는 37번 바뀌었으며, 마지막은 「인터내셔널가」의 전원 합창이다.

왜 이렇게 큰 공연을 했나?

시작은 북한이었다. 1960년 북한을 찾은 공군 사령관 류야러우가 인민군의 대형 가무 《삼천리강산》에 감명받아,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들을 교육할 공연을 지시했다. 공군 문공단의 《혁명 역사 가곡 표연창》이 그렇게 나왔다. 상하이 문예계는 1964년 《마오쩌둥의 깃발 아래 힘차게 전진하자》를 만들었고, 천이의 추천으로 이를 본 저우언라이가 7월에 국경절 15주년 공연으로 키우기로 했다. 두 달 남짓 만에 만든 셈이다. 저우언라이는 성공 뒤 이 작품을 “조선의 영향, 상하이의 기초, 전국의 역량”이라고 요약했다.

인민 해방군을 배우자는 당시 구호에 맞추어 출연자는 군대 문공단을 중심으로 뽑았다. 칭화대학 학생이던 후진타오도 연습에 참가했고, 그가 쓴 관람기가 그해 10월 《인민일보》에 실렸다.

마오쩌둥은 왜 뒷부분을 잘랐나?

원래는 8장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다루는 「조국은 전진한다」와 「세계는 전진한다」가 뒤에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장은 마오쩌둥의 뜻에 따라 빠져서 1949년에서 끝나게 되었다. 이것이 뒤에 작품의 발목을 잡았다. 1965년 10월 1일 개봉한 영화(왕핑·리언제 감독)는 문화대혁명 동안 상영이 금지되었는데, 사회주의 사회의 내용을 뺐다는 것이 정치적 이유였다. 영화는 1977년에야 다시 극장에 걸렸다.

그 노래는 어디서 왔나?

작품의 첫머리를 여는 「동방홍」의 곡조는 황토 고원의 민요 「참기름」에서 왔고, 1930~1940년대 산시(陝西) 북부의 연가 「백마조」로 이어졌다. 가사를 처음 쓴 사람은 농민 리유위안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설이지만 작자에 대해서는 다툼이 있다. 문화대혁명 때 국가 「의용군 행진곡」의 작사자 톈한이 타도되자 「동방홍」이 사실상 국가의 자리를 차지했고, 많은 방송국이 이 곡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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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zh.wikipedia.org
  2. zh.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