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모녀
The White-Haired Girl
1945년 옌안에서 초연된 중국 가극과, 이를 옮긴 영화(1950)·발레(1964~1965) 등의 작품. 빚 때문에 지주에게 끌려간 농민의 딸 시얼이 산속으로 도망쳐 머리가 하얗게 센 채 살다가 팔로군에게 구출된다. 문화대혁명기에는 발레판이 혁명 모범극이 되었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섣달그믐 밤, 소작농 양바이라오가 빚쟁이를 피해 다니다 몰래 집으로 돌아온다. 그를 기다린 것은 지주 황스런의 요구다. 빚 대신 딸 시얼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양바이라오는 그날 밤 두부 만들 때 쓰는 간수를 마시고 죽는다.
황씨 집에 끌려간 시얼은 황스런에게 겁탈당하고 달아나 깊은 산 동굴에 숨는다. 사당의 제물을 훔쳐 먹으며 사는 동안 머리칼이 온통 하얗게 센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그를 흰 털의 선녀로 여긴다. 몇 해 뒤 시얼의 연인 다춘이 팔로군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 동굴에서 그를 찾아낸다. 마을 사람들은 시얼과 함께 황씨 일가를 성토하고, 어둠 속에서 나온 시얼은 햇빛 아래 선다.
작품의 주제는 1945년 말에 합창으로 덧붙은 한 문장으로 알려져 있다. “옛 사회는 사람을 귀신으로 만들고, 새 사회는 귀신을 사람으로 만든다.”
어떻게 만들어졌나?
시작은 민간 전설이었다. 1930년대 말 진차지 변구 일대에는 산 동굴에 산다는 ‘백모선고’(흰 털 선녀) 이야기가 돌았고, 1944년 5월 《진차지일보》 기자가 이를 저우양에게 편지로 알렸다. 1942년 마오쩌둥의 옌안 문예 강화 이후 예술가들은 농민의 이야기를 농민이 알아듣는 형식으로 옮기려 했다. 루쉰예술학원의 허징즈와 딩이가 대본을 쓰고 마커 등이 곡을 붙였으며, 민요 「소백채」 같은 가락을 뼈대로 삼았다. 초연은 1945년 4월 28일, 중국공산당 제7차 대회 하루 전날 옌안의 중앙당교 강당에서였다.
대성공이었지만 무대는 계속 고쳐졌다. 초기 공연은 지주를 체포하는 데서 끝났는데, 당 지도부는 마지막에 지주를 처형하라는 쪽지를 창작자들에게 보냈다. 처음 판본의 시얼은 겁탈로 임신한 뒤 황스런과 혼인하기를 잠시 바라기도 하다가, 자기가 팔려 갈 것을 알고서야 달아난다. 이런 흔들림은 뒤로 갈수록 사라졌다.
판본마다 무엇이 달라졌나?
1950년에 완성된 영화(수이화·왕빈 감독, 톈화 주연)는 토지개혁과 때를 같이해 나와 관객에게 ‘고통 호소’를 권하는 멜로드라마가 되었고, 1951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촬영과 편집 등을 옛 만주영화협회에서 남은 일본인들이 중국식 가명으로 맡았다는 것도 뜻밖의 사실이다. 일본 마쓰야마 발레단은 1955년 이 영화를 바탕으로 발레를 만들어 중일 ‘발레 외교’의 통로가 되었다.
상하이 무용학교의 발레판(1964~1965)은 장칭의 지도 아래 혁명 모범극의 하나가 되었다. 자살은 정치적으로 굴복하는 것이라 하여 양바이라오는 멜대를 들고 지주에게 맞서다 총에 맞아 죽는 인물로 바뀌었다. 시얼과 다춘의 사랑은 계급적 정으로 대체되었고, 1972년 영화의 시얼은 겁탈을 물리치고 달아난다. 이렇게 지주가 힘센 농민들을 거의 위협하지 못하게 되면서 원작의 정서적 힘이 사라졌다는 평도 있다. 개혁 개방 뒤 인기는 떨어져서 1981년 칭다오 공연은 야유를 받았고, 2015년에는 시진핑의 문예 좌담회 연설에 따른 부활 공연이 옌안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