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光政策 · 1941–1945.03

삼광 작전

Three Alls policy

중일전쟁 때 일본군이 화베이의 공산당 근거지를 겨누어 벌인 초토화 소탕전. 「모두 죽이고, 모두 태우고, 모두 빼앗는다」는 뜻으로 중국에서 붙인 이름이며 일본군은 「신멸 작전」이라 불렀다. 1940년 백단대전에 대한 보복으로, 1941년 7월 북지나방면군 사령관이 된 오카무라 야스지가 크게 강화했다. 마을 파괴·학살·강제 노동·식량 약탈·독가스로 수백만 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상세

북지나방면군은 1938년 말부터 이미 유격대에 대한 섬멸전을 벌이고 있었고, 다나카 류키치가 1940년 이를 체계화했다. 백단대전 뒤 오카무라 야스지는 병력을 두 배로 늘려 1941~1942년 산둥·허베이·산시·허난·차하얼에서 다섯 차례의 「치안숙정」을 벌였다. 1941년 12월 대본영 명령 제575호는 적의 전쟁 의지를 꺾으라고 지시했다. 일본군은 유격 근거지로 의심되는 지역을 「무인 지대」로 만들기 위해 마을을 통째로 없애고, 젊은 남자를 죽이거나 노무자로 끌고 갔으며, 곡식과 밭을 없애 굶주림을 무기로 썼다.

공산당 기록으로 근거지 인구는 4,400만 명에서 2,500만 명으로 줄었고, 일본 역사가 히메타 미쓰요시는 적어도 247만 명의 민간인이 이 작전으로 죽었다고 추산한다. 일부 역사가는 그 규모와 의도를 들어 이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한다. 소탕전은 1945년 3월까지 계속되었으나 화베이를 평정하지는 못했다. 오카무라는 전후 상하이 전범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