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фимская операция (1919) · 1919.05.25–06.20

우파 작전 (1919)

Ufa operation (1919)

1919년 5월 25일부터 6월 20일까지 미하일 프룬제의 남부집단군이 벨라야강을 건너 우파를 되찾은 작전으로, 동부전선 반격의 마지막 단계다. 6월 7~8일 밤 바실리 차파예프의 제25사단이 우파 북쪽 크라스니야르에서 강을 건너 교두보를 넓혔고, 6월 9일 우파가 붉은 군대 손에 들어왔다. 콜차크의 서부군은 포위는 피했지만 우랄 쪽으로 물러나야 했다.

상세

벨레베이에서 진 백군은 벨라야강 뒤로 물러나 우파를 지키려 했고, 우파 하류의 벨라야강 어귀에 보병 6개 연대를 모아 투르키스탄군의 측면을 노렸다. 5월 28일 강을 건넌 이 백군 타격 부대는 이튿날 붉은 군대 제5군에게 깨졌고, 제5군은 30일 벨라야강을 건너 6월 7일 비르스크를 차지했다. 붉은 군대는 우파 남쪽을 주공 방향으로 삼아 제24사단과 제3기병사단을 두었으나 이쪽의 도하는 실패했고, 북쪽의 제25사단과 제5군 제26사단만 6월 4~7일 크라스니야르와 아흘리스티노에서 교두보를 얻었다. 프룬제는 8일 예비인 제31사단을 북쪽으로 돌리고 제25사단 전부를 교두보로 넘겼고, 차파예프 부대는 9일 격전 끝에 우파에 들어갔다. 이튿날 제31사단은 우파 동쪽 18킬로미터에서 우파와 첼랴빈스크 사이 철도를 끊었고, 백군은 6월 16일 전선 전체에서 물러나기 시작해 19~20일 큰 손실을 내고 포위를 벗어났다. 이 작전은 135킬로미터 폭에서 하루 6~7.5킬로미터씩 나아갔으며, 붉은 군대는 우파 공업 지대를 얻고 남우랄로 들어갈 길을 열었다.

우파는 반년 사이 세 번 주인이 바뀌었다. 1918년 12월 31일 붉은 군대가 차지했고 1919년 3월 13일 콜차크군이 빼앗았다. 트로츠키는 4월 1일 모스크바 소비에트에서 “우리가 앞서 페름을, 이제는 우파를 잃은 것은 우리에게 큰 타격이다”라고 인정하면서도 동부전선에서 파국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4월 7일 「우랄로!」에서는 “우파, 즐라토우스트, 예카테린부르크, 페름은 노동자와 농민의 러시아라는 가족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썼다. 6월의 우파 탈환은 그 첫 고리였다. 차파예프 사단의 벨라야강 도하는 1968년 소련 영화 「벨라야강 위의 뇌우」의 소재가 되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러시아어)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위키백과 (영문)
  4.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5.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