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rea Basarabiei cu România · 1918

베사라비아의 루마니아 합병

Union of Bessarabia with Romania

1918년 4월 9일 스파툴 처리이가 몰다비아 민주공화국을 루마니아 왕국과 합치기로 한 결의와 그에 이은 병합 과정. 처음에는 베사라비아의 자치와 토지개혁 등을 조건으로 했으나, 1918년 12월 정족수에 못 미친 회의가 토지개혁 외의 조건을 버렸고 1919년 12월 루마니아 제헌의회가 비준했다. 1920년 파리 의정서로 영국·프랑스·이탈리아가 인정했지만 의정서는 발효되지 않았고, 소비에트 러시아와 미국은 인정하지 않았다.

상세

합병 결의는 루마니아군이 베사라비아를 장악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대지주가 장악한 벌치·소로카·오르헤이 군의회가 좌파 인민주의자가 다수인 스파툴 처리이의 급진 토지개혁보다 왕정이 낫다며 먼저 합병을 청원했고, 몰도바 지도자 다니엘 추구레아누와 이온 인쿨레츠는 이아시에서 루마니아 정부와 협의했다. 4월 9일 표결은 찬성 86, 반대 3, 기권 36(대부분 비루마니아인), 불참 13이었고, 법이 요구한 주민투표는 열리지 않았다. 러시아어 위키백과는 의사당이 기관총을 갖춘 루마니아군에 둘러싸여 있었고 공개 호명으로 표결했다고 쓴다. 조건은 토지개혁 실시, 민주적으로 선출된 자체 의회를 가진 자치, 지방 예산·젬스트보·시의회 통제와 지방 행정관 임명, 지역 단위 징병, 소수민족 권리 존중, 루마니아 정부에 베사라비아 대표 두 명 참여, 직접·평등·비밀·보통선거, 언론·신앙의 자유, 혁명기 정치범 사면 등 11개였다. 당시 루마니아 총리 알렉산드루 마르길로만은 훗날 합병이 루마니아에서 결정되었다고 인정했다.

1918년 11월 토지개혁이 승인되자 스파툴 처리이는 나머지 조건을 모두 없애는 동의를 통과시켰는데, 125명 가운데 44명만 참여해 모두 찬성한 이 표결은 정족수 미달로 정당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회는 곧 해산되었고 옛 의원들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19년 가을 베사라비아에서 하원의원 90명과 상원의원 35명이 뽑혔고, 12월 20일 이들이 트란실바니아·부코비나 대표와 함께 합병 법령을 비준했다. 파리 강화회의에서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 대표가 루마니아에 관해 유일하게 합의한 것이 베사라비아 귀속이었지만, 1920년 10월 28일 파리 의정서는 일본이 비준하지 않아 발효되지 못했고 미국은 러시아가 대표되지 않았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합병이 점령군 아래에서 강요되었다며 인정하지 않았고, 1940년 6월 26일 최후통첩으로 베사라비아를 넘겨받았다. 영국 역사가 버나드 뉴먼은 표결이 베사라비아 주민의 지배적 의사를 대표했다고 보았다. 오늘날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통합 지지자들은 구력 표결 날짜인 3월 27일을 합병 기념일로 지킨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 용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