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가 대기근
Volga Famine
볼가 대기근은 1921년부터 1923년까지 볼가 강 유역과 우랄, 우크라이나 남부 등 35개 현을 휩쓴 대규모 기근이다. 전시공산주의의 식량할당징발제와 1921년 봄 가뭄, 7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농업·철도 붕괴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약 5백만 명이 아사하거나 전염병으로 사망했으며, 식인까지 보고될 정도로 참혹했다. 소비에트 정부는 막심 고리키의 호소로 국제 구호를 받아들였고, 허버트 후버의 미국구호청(ARA)이 매일 천만 명 이상을 먹여 살렸다. 이 기근은 전시공산주의에서 네프로의 전환을 가속한 결정적 계기였다.
상세
원인
기근의 직접적 방아쇠는 1921년 봄 가뭄이었으나, 근본 원인은 구조적이었다. 7년에 걸친 제1차 세계대전·혁명·내전으로 철도와 농업 기반이 붕괴했고, 전시공산주의의 식량할당징발제(프로드라즈베르스트카)는 농민이 자기 소비 이상으로는 파종할 동기를 없앴다. 1919~1921년의 과도한 징발 할당량은 파종용 종자까지 거두어 갔다. 여기에 1920년 가을 가뭄에 약한 겨울 파종 작물을 과도하게 심은 것도 피해를 키웠다.
규모와 피해
기근은 사마라·사라토프·차리친 등 볼가 중하류, 바시키르·타타르 공화국,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 카자흐스탄 서부까지 총인구 9천만 명 지역을 덮쳤고, 이 가운데 최소 2천8백만~4천만 명이 굶주렸다. 1921년 가을부터 1922년 봄까지가 정점이었다. 아사자에 더해 콜레라·장티푸스가 창궐했고, 사마라에서는 인육을 판 정육점이 적발될 정도로 식인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국제 구호
1921년 7월 막심 고리키가 서방에 보낸 공개 서한을 계기로, 허버트 후버가 이끄는 미국구호청(ARA)과 프리초프 난센의 국제러시아구호위원회(ICRR)가 대규모 구호 작전을 펼쳤다. ARA는 리가 협정을 통해 소비에트 정부와 합의한 뒤 237척의 선박으로 7억 6,800만 톤 이상의 식량과 12만 5천 개의 의료 패키지를 수송했고, 2만 1천여 개의 무료 급식소에서 매일 1천만 명 이상을 먹였다. 유럽 측에서는 난센 위원회, 교황청 선교단, 영국·스웨덴·독일 적십자, 국제아동구호연합 등이 참여했다.
교회 재산 몰수
1922년 2월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는 기근 구호를 명분으로 교회의 귀금속을 몰수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티혼 총주교는 예배용 성물의 몰수를 신성모독으로 간주해 저항했고, 이는 볼셰비키 정권의 본격적인 반종교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몰수된 귀금속 가운데 실제 기근 구호에 쓰인 것은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은 당의 반교회 투쟁 자금으로 흡수되었다.
정치적 결과
기근은 전시공산주의의 지속 불가능성을 극적으로 입증했고, 1921년 3월 제10차 당대회에서 결정된 네프로의 전환을 가속했다. 동시에 소비에트 권력이 이념적 적인 자본주의 세계에 구호를 요청해야 했던 첫 사례였으며, 이 모순된 경험은 이후 소비에트 지도부의 대외 인식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auses (drought, war communism, Civil War), ~5 million dead, cannibalism, ARA and Nansen operations, Riga agreement, political dimensions
- 위키백과 (러시아어) 35 gubernias, 90 million total population, 40+ million starving, Pomgol, church valuables confiscation, foreign relief breakdown
- hoover.org Lenin's acknowledgment of prodrazvyorstka, Gorky's appeal, Hoover's ARA, Riga negotiations August 1921
- jordanrussiacenter.org Maria Fedorova (Macalester College): 768 million tons food, 125,000 medical packages, Friends of Soviet Russia and other relief organiz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