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용군 (백군)
Volunteer Army (White)
1917년 말 노보체르카스크에서 알렉세예프와 코르닐로프가 장교·사관생도를 모아 만든 남러시아의 백군. 빙상 행군과 두 차례의 쿠반 원정을 거쳐 북캅카스를 차지했고, 1919년 1월 남러시아군의 중심 부대가 되어 그해 가을 오룔까지 진격했다. 1920년 3월 노보로시스크에서 크림으로 철수해 브란겔의 군대에 합쳐졌다.
상세
처음에는 창설자의 이름을 딴 「알렉세예프 조직」이었고, 1918년 1월 9일(구력 1917년 12월 27일) 의용군 창설이 공식 발표되었다. 알렉세예프가 총지도자, 코르닐로프가 총사령관, 루콤스키가 참모장, 데니킨이 제1사단장, 세르게이 마르코프가 제1장교연대장을 맡았고, 첫 지원자 3천 명 가운데 사병은 열두 명뿐이었다. 1918년 2월 붉은 군대에 밀려 로스토프를 떠난 약 4천 명은 쿠반으로 「빙상 행군」을 했고, 4월 13일 예카테리노다르 공격 중 코르닐로프가 전사하자 데니킨이 지휘를 이었다. 6월 드로즈돕스키의 3천 명이 합류한 뒤 제2차 쿠반 원정에 나서 9월까지 3만~3만 5천 명으로 불어났고, 이 무렵 「캅카스 의용군」이라 불렸다.
1919년 1월 8일 돈군과 함께 남러시아군을 이루었고, 5월 캅카스군과 갈라진 뒤 마이-마옙스키 지휘 아래 약 4만 명으로 모스크바 진격의 주공을 맡았다. 장교 비율이 높아 전투력은 강했지만, 여름의 손실과 동원 농민·포로 충원으로 질이 떨어졌고 10월 붉은 군대의 반격에 결정적으로 패했다. 1920년 초 쿠테포프 지휘의 5천 명 군단으로 줄어든 의용군은 3월 26~27일 노보로시스크에서 크림으로 실려 갔다. 영어 출처는 대다수 주민이 이해할 정치 구상을 내놓지 못한 것을 패인으로 든다. 「의용군」이라는 이름은 남러시아 백군 전체를 가리키는 약칭으로도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