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노동자당
Workers' Party of Ethiopia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존재한 에티오피아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 군사정부 데르그가 장래 사회주의 국가의 전위당으로 세웠고,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서기장을 맡았다. 1987년 에티오피아 인민민주공화국 수립과 함께 유일 합법 집권당이 되었으나, 1991년 5월 정권이 무너진 뒤 해산되었다.
상세
1974년 하일레 셀라시에 1세를 무너뜨린 군 위원회 데르그는 이듬해 군주제를 폐지하고 사회주의를 선언했다. 소련은 민간 기반의 전위당을 만들라고 압박했고, 1977년 데르그 의장이 된 멩기스투는 처음에는 혁명이 당 없이도 성공했다며 반대했으나, 무장 반대가 커지자 태도를 바꾸었다. 1979년 12월 에티오피아 근로인민당 조직위원회(COPWE)가 만들어졌다. 1983년 무렵 회원은 약 5만 명, 세포는 약 6500개였고, 중앙위원 123명 가운데 79명이 군인이었다.
당은 혁명 10주년에 맞춰 창립되었다. 창립 날짜는 영어 출처가 1984년 9월 12일, 러시아어 출처가 창립 대회 기간인 9월 6~10일로 적는다. 대회는 중앙위원 183명과 정치국원 11명을 뽑았고, 정치국원 가운데 7명은 살아남은 데르그 위원이었다. 멩기스투가 서기장이 되었다. 1987년 헌법은 당을 「국가 발전 과정의 입안자이자 국가와 사회의 지도 세력」으로 규정했고, 데르그를 해산하고 국호를 에티오피아 인민민주공화국으로 바꾸었다.
러시아어 출처에 따르면 집권당은 반공 세력인 에티오피아 민주연합뿐 아니라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당,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처럼 마르크스주의를 내건 세력과도 내전을 벌였다. 가뭄과 실정, 1990년 소련 지원 중단, 내전 패배가 겹쳤다. 1990년 3월 중앙위원회 제11차 전원회의에서 멩기스투는 사회주의 노선이 기대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며 시장 개혁을 과제로 내세웠고, 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버리고 「에티오피아 민주통일당」으로 바뀔 예정이었다. 1991년 5월 멩기스투가 나라를 떠났고, 과도정부가 당을 해산하고 지도자 다수를 투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