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핀란드당
Young Finnish Party
핀란드 대공국에서 활동한 자유주의 정당으로, 정식 이름은 「입헌핀란드파당」이다. 1894년 핀란드당 안에서 별도 강령을 가진 분파로 출발해 1905년 독립 정당이 되었고, 러시아화 정책에 맞서 헌법 수호와 수동적 저항을 내세웠다. 1918년 정체 문제로 갈라져 공화파는 국민진보당, 군주제파는 국민연합당으로 옮기면서 활동을 마쳤다.
상세
핀란드어 출처에 따르면 청년핀란드파의 뿌리는 1880년대 예술가 집단(아호 가문, 얘르네펠트 가문, 카시미르 레이노 등)에 있었다. 1894년 핀란드당 안에서 별도 강령을 가진 분파가 되었고, 1905년 에로 에르코와 K. J. 스톨베리가 이끄는 독립 정당이 되었다. 압제기 동안 순응 정책을 거부한 핀란드당 당원들이 합류했고, 제1차 압제기에 청년핀란드당과 스웨덴당은 무소속 레오 메켈린의 지도 아래 함께 러시아화에 맞서 헌법을 지켰다.
1894년 강령은 보통·평등선거를 목표로 삼았고, 경제적으로는 영업의 자유와 보호관세 반대를 내세운 자유주의 노선이었다. 사전검열 폐지, 관료주의 축소, 누진세, 노동자 사고보험 의무화, 전국 의무 초등교육 등도 요구했다. 1905년 압제기가 끝난 뒤 메켈린 원로원은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자유를 정하고 신분제 의회를 단원제 의회로 바꾸는 개혁을 이끌었으며, 선거권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성인으로 넓어졌다.
1907년 첫 의회 선거에서 청년핀란드당은 200석 가운데 70석 안팎을 기대했으나 26석에 그쳤고, 철저한 헌법주의자 P. E. 스빈후부드가 의장에 뽑혔다. 마지막 10년 동안 당은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참새파」(스톨베리, 에로 에르코)와 헌법 수호를 앞세운 보수·민족주의 성향의 「제비파」(요나스 카스트렌, 스빈후부드)로 나뉘어 있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1918년 독일 우위 아래 청년핀란드파 다수가 독일 왕자 프리드리히 카를을 핀란드 국왕으로 뽑는 데 찬성했다.
독립한 핀란드의 정체 문제는 1918년 당을 둘로 갈랐다. 참새파 중심의 다수는 공화주의자들이 세운 국민진보당에 합류했고, 제비파 다수는 군주제를 지지한 국민연합당으로 옮겼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독일의 패전으로 군주제 정책이 무너진 뒤 스톨베리가 1919년 7월 25일 핀란드 첫 대통령에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