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ürcher Resolution (1893) · 1893–1896

취리히 결의 (1893)

Zurich Resolution (1893)

1893년 제2인터내셔널 취리히 대회가 채택한 입장 자격 결의. 모든 노동조합과 함께 「노동자의 조직과 정치 행동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회주의 정당만 대회에 받아들여, 정치 행동을 거부한 아나키스트를 사실상 배제했다. 1896년 런던 대회가 재확인했다.

상세

1891년 브뤼셀 대회의 조직자들은 이미 정치 행동을 인정하는 정당만 초청했지만, 아나키스트와 독일 사회민주당의 반대파는 여전히 대회에 나타나 회의를 어지럽혔다. 1893년 8월 취리히 대회는 개회 직후, 본격 토의에 앞서 아우구스트 베벨의 발의로 입장 자격을 표결했다. 결의는 정치 행동을, 정치적 권리와 입법 기구를 써서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넓히고 정치권력을 쟁취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격렬한 논란 끝에 구스타프 란다우어 등 독일 아나키스트 대표들은 힘으로 끌려 나갔다.

1896년 런던 대회는 개막 회의에서 국가별 대표단 표결로 이 결의를 재확인했다. 17개 대표단이 찬성하고 프랑스(57 대 56)와 네덜란드(9 대 5)가 반대했으며 이탈리아는 기권했다. 영국 독립노동당의 키어 하디와 톰 만은 의회 바깥 활동을 앞세운 사회주의자까지 내쫓는다며 반대했다. 대회는 다음 대회의 초청 규정에 입법·의회 행동을 받아들이는 조직만 초청하며 「따라서 아나키스트는 배제된다」고 못 박았다. 이로써 사회주의 운동과 아나키즘은 조직상 완전히 갈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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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
  2.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