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베노 (불가리아)
Zveno (Bulgaria)
1927년 6월 불가리아에서 정치인·지식인과 장교들이 세운 정치 단체(정치 서클 즈베노). 정당 체제와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조직(VMRO)의 테러에 반대하며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권위주의적 개혁을 내세웠고, 1934년 5월 19일 쿠데타로 키몬 게오르기예프 정부를 세운 뒤 스스로 해산했다. 1943년 불가리아 조국전선에 참여해 1944년 9월 9일 다시 정권을 잡았고, 1949년 2월 조국전선에 합쳐 사라졌다. 소련 콜호스의 작업조 즈베노와는 다르다.
상세
즈베노는 1927년 봄 총선의 당파 싸움과 VMRO 내분에 실망한 이들이 1927년 6월 세웠다. 주로 집권 민주동맹 출신이었고 급진파·민주당·광의 사회주의자도 있었다. 디모 카자소프가 창간한 잡지 『즈베노』(1928~1934)를 중심으로 처음에는 정당이 아닌 단체로서 갈라진 정당들의 통합을 목표로 했고, 가장 컸던 1934년에도 회원이 3천 명 남짓이었다. 1930년 6월 28일 강령 선언에서 선출 기관 축소·임기 연장·조합주의 선출을 내걸며 정치 조직으로 바뀌었다.
1931~1934년 인민블록 정부 시기에 불만을 품은 부르주아 정당 인사들과 군사동맹 지도부 다수가 즈베노 주변에 모였다. 1934년 5월 19일 즈베노 지지자들이 군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키몬 게오르기예프가 총리가 되었고, 헌법 효력 정지와 의회 해산, 모든 정당·정치 단체 해산 속에 즈베노도 스스로 해산했다. 1935년 보리스 3세가 즈베노 출신 장군 펜초 즐라테프를 통해 이들을 권력에서 밀어낸 뒤 즈베노는 왕정에 맞선 야당이 되어 권위주의를 버렸다.
즈베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했고, 1943년 불가리아 조국전선에 들어가 대표를 국민위원회에 보냈다. 1944년 9월 9일 쿠데타 뒤 게오르기예프가 총리, 다먄 벨체프가 국방장관, 페트코 스타이노프가 외무장관, 스탄초 촐라코프가 교육장관을 맡았다. 10월 1일 전국 회의에서 인민동맹 즈베노라는 정당이 되어 게오르기예프를 의장으로, 스타이노프 등을 집행국원으로 뽑았다.
지방에서는 공산당의 견제로 조직이 막혔고, 1946년 대국민의회 선거에서 약 7만 표에 그쳐 지도자들은 조국전선 공동 명부 덕에만 의원이 되었다. 1947년 이후 공산당과 가까운 이들이 눈 밖에 난 벨체프·스타이노프를 공개 비판하라고 요구했고, 1949년 2월 19일 회의에서 인민동맹 즈베노는 스스로 해산해 조국전선에 합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