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땅, 우리의 어머니 / 우리는 돌아가리라」. 시집 『성스러운 희망』(1974)에 실린 시 「우리는 돌아가리라」에서.
앙골라 독립 투쟁을 이끈 의사이자 시인. 1956년 12월 MPLA 창립 시 초대 의장이었고, 수감으로 명예직이었다가 1962년 12월 회의에서 실질 의장으로 선출되어 1974년까지 독립 전쟁을 지도했다. 1975년 11월 11일 앙골라 인민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해 소련·쿠바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일당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으며, 1977년 쿠데타 시도 이후 대규모 숙청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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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포르투갈 유학, 코임브라·리스본 대학 의학부에서 수학하며 반식민주의 학생운동 참여
1956앙골라 해방인민운동(MPLA) 창립 당시 초대 의장(사무총장은 비리아투 다 크루스)
1960–1962PIDE에 체포되어 리스본 구금, 1962년 탈출 후 콩고-레오폴드빌로 망명
1962–1974MPLA 대표자 회의에서 실질 의장으로 선출되어 독립 전쟁을 지도하고 소련·쿠바·유고슬라비아와 유대를 구축
197511월 11일 앙골라 인민공화국 초대 대통령 취임, 사회주의 노선 선언
1975–1979쿠바 군사 개입과 소련 지원으로 내전 방어, 1977년 니투 알베스의 쿠데타 시도 진압
1977MPLA를 MPLA-노동당(MPLA-PT)으로 재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채택
카레이라는 1976년 10월 전원회의 뒤 "MPLA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과학적 사회주의뿐"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앙골라 독립 후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인민군(FAPLA)을 창설·지휘한, 네투 다음 가는 MPLA 군사 지도자였다. 1976년 10월 전원회의 뒤 그는 "MPLA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과학적 사회주의뿐"이라고 선언해 당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채택을 증언했다. 1977년 니티스타 봉기 진압과 군사재판을 지휘했으나, 1979년 네투 사망 뒤 실각해 말년엔 조국의 '야만적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1977년 5월 20~21일 MPLA 중앙위원회가 그와 니투 알베스를 분파주의 혐의로 제명했고, 5월 27일 쿠데타 미수가 뒤따랐다.
앙골라의 군인·정치가·반식민 사상가. 마르크스주의 계열이던 가족의 영향으로 의학 공부를 접고 MPLA에 들어가 루안다 지하위원회를 조직했고, '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0년 1월 군사정보 임무로 포르투갈 식민군에 입대해 무기를 빼내다 체포됐다가 1974년 카네이션 혁명 뒤 석방됐다. 1974년 7월 룬도지 회의에서 최연소 중앙위원이 됐고, 1975년 3월 FAPLA 국가정치위원 겸 부참모장에 임명됐다. 1976년 제25차 소련공산당 대회에 니투 알베스와 함께 참석했고, 정통 공산주의 니티스타 지도부였다. 1977년 5월 제명 뒤 체포돼 처형됐다.
1975년 11월 경제장관으로 임명되고 1976년부터 계획부 장관 겸 제2부총리로서 앙골라 경제계획의 설계를 맡았다. 1977년 5월 27일 진압 이후 정부·당 요직에서 물러났다.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다 호샤 올리베이라 디롤루아(1939년 12월 2일 숨베 출생, 1996년 11월 16일 루안다 사망)는 앙골라의 경제학자이자 반식민주의 활동가, 대학 교수였다. 1950년대 루안다에서 민족주의 사상을 접하고 1961년 비리아투 다 크루스의 영향으로 MPLA에 들어가 디롤루아 전시명을 썼다. 돌리지에서 제1혁명훈련센터를 세우고 교수했으며 1963년 동베를린으로 파견되었다. 1974년 중앙위원회·정치국 위원이 되어 11월 8일 루안다에 들어간 26인 대표단에 참여했고, 1975년 11월 경제장관, 1976년부터 계획부 장관 겸 제2부총리를 지냈다. 1977년 5월 27일 진압 이후 정부·당 요직에서 물러났고 1996년 루안다에서 사망했다.
1977년 중앙위원회에서 그는 "나는 곧 혁명의 화신이다"라며 지도부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앙골라 해방운동 MPLA의 초대 내무장관이자 급진 '니티스타' 파벌 지도자였다. 식민지 전쟁기 뎀보스 지역 게릴라 지휘관으로 떠올라, 독립 뒤 내무부를 장악해 추종자들을 국가 기구 곳곳에 심었다. 1976년 3월 소련공산당 제25차 대회에 대표단을 이끌고 가 스스로를 '순수 마르크스레닌주의파'로 내세워 소련의 지지를 구했으며, 이것이 네투 지도부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식 채택을 재촉했다. 1977년 5월 쿠데타 미수 끝에 체포돼 총살당했다.
앙골라의 화학 공학자·외교관·정치인. 리스본 유학 중 1956년 MPLA 창립 문서 「1956년 선언」에 서명하고 1961년부터 PIDE의 감시를 받다가 1962년 포르투갈을 떠나 코나크리에서 MPLA 외교 실무를 맡았다. 이집트·알제리 대표, 콩고-브라자빌 대표부 총괄, MPLA 정보부 책임자를 거쳐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외무장관을 지냈고, 독립 뒤 MPLA 좌익 분파의 대표적 인물로 1998년 인터뷰에서 당·국가 요직은 민족·지역 인구 비중이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 전위 기준으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0년 6월 26일 루안다에서 76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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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1962리스본 대학 이학부에서 화학 공학 수학, 제국학생회관 거주, 1956년 선언 서명, 1961년부터 PIDE 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