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 카레이라

Iko Carreira

앙골라 인민군을 창설한 초대 국방부 장관

카레이라는 1976년 10월 전원회의 뒤 “MPLA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과학적 사회주의뿐”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앙골라 독립 후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인민군(FAPLA)을 창설·지휘한, 네투 다음 가는 MPLA 군사 지도자였다. 1976년 10월 전원회의 뒤 그는 “MPLA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과학적 사회주의뿐”이라고 선언해 당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채택을 증언했다. 1977년 니티스타 봉기 진압과 군사재판을 지휘했으나, 1979년 네투 사망 뒤 실각해 말년엔 조국의 ‘야만적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다른 이름: 엔히크 알베르투 콰드리우스 텔레스 카레이라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포르투갈군 탈영에서 앙골라 인민해방군 지휘관까지, 1961~1975

카레이라는 1950년대 리스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군으로 방향을 바꿔 포르투갈 공군에서 복무했다. 알제에 파견된 포르투갈 군사사절단의 보조로 일하던 중 앙골라 반식민지 운동과 접촉해 MPLA에 가입했고, 1961년 ‘100인의 탈출’로 페드루 피레스, 조아킴 시사누 등과 함께 포르투갈군에서 탈영했다. 이후 그는 네투를 보좌하는 가장 기민한 군사 전략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MPLA 내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직업군인 출신으로서 그는 앙골라 인민해방군(EPLA) 조직을 맡은 지휘관의 한 사람이 되어 독립전쟁 기간 포르투갈군에 대한 작전을 지휘했다. 룬다노르트와 말란제를 장악한 ‘이코 계획’의 성공으로 그의 전략가로서의 명성은 크게 높아졌고, EPLA는 루에나와 룽구에붕구에서 말란제로 이어지는 이른바 ‘아고스티뉴 네투 루트’를 통제하게 되었다. 1974년부터는 EPLA를 앙골라 인민해방군(FAPLA)으로 재편하는 작업을 맡은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다.

반식민지 투쟁은 군사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71년 부당수 도밍구스 킬레바가 나이로 은퇴하면서 MPLA 지도부는 루시우 라라를 부당수, 카레이라를 사무총장으로 하는 체제로 재편되었고, 1974년과 1975년에는 알보르 협정으로 귀결된 포르투갈과의 협상에 참여했다. 독립 전야인 1975년 11월 12일 그는 앙골라 인민공화국 초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