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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행정 · 체코슬로바키아 국가기관 인물 4명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

Tomáš Garrigue Masaryk
정치·당 지도 소속 미확정 체코슬로바키아 체코인 1850–1937 ○ 자연사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조직하고 볼셰비키와 펜자 협정을 맺은 독립운동의 철학자-대통령

1918년 3월 7일, 68번째 생일을 맞은 마사리크는 시베리아 횡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군단에 직접 보여주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는 열차에 올랐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의회 의원이었던 마사리크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망명하여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운동의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1917년 러시아로 건너가 체코·슬로바키아 포로병들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편성하고 볼셰비키와 펜자 협정을 체결, 군단의 블라디보스토크 경유 프랑스 이송을 확보했다. 1918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17년간 중부 유럽에서 가장 안정된 민주국가를 이끌었고, 그의 성공은 러시아 내전에 군단이 휘말리는 모순 위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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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2–1914프라하 카렐 대학 철학 교수
  • 1891–1893오스트리아 제국의회(라이히스라트) 의원 (청년체코당)
  • 1907–1914오스트리아 제국의회 의원 (체코 진보당)
  • 1915–1918체코슬로바키아 민족평의회 의장 (망명)
  • 1917–1918러시아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편성 지휘
  • 1918–1935체코슬로바키아 초대 대통령

사직서 한 장으로 정부를 무너뜨리려 했으나 고트발트의 손을 들어준 마지막 민주 대통령

1948년 2월 25일, 베네시는 공산당 민병대가 프라하 거리를 장악하고 내전이 임박한 가운데 비공산당 장관 12명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로, 1차 대전 중 마사리크·슈테파니크와 함께 민족평의회를 창설했다. 1918년부터 17년간 외무장관으로서 국제연맹과 소협상을 주도하며 프랑스·소련과의 동맹 체계를 구축했다. 뮌헨 협정으로 사임 후 런던 망명정부를 이끌었고, 전후 귀환해 대통령에 복귀했다. 1948년 2월 쿠데타에서 비공산당 장관들의 사직서를 수리하고 고트발트의 공산당 정부를 승인함으로써 체코슬로바키아의 소비에트 블록 편입을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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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1918체코슬로바키아 민족평의회 서기
  • 1918–1935체코슬로바키아 외무장관
  • 1921–1922체코슬로바키아 총리
  • 1935–1938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 1940–1945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 대통령
  • 1945–1948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올드르지흐 체르니크

Oldřich Černík

프라하의 봄을 이끈 광부 출신 기술관료 총리

1968년 7월, 「2000개의 말」 선언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체르니크는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선언은 결코 반혁명의 표현이 아니라 당의 한 분파의 의견일 뿐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개혁공산주의 총리(1968~1970). 광산 노동자 출신 기술관료로, 연료·에너지 장관과 국가계획위원회 의장을 거쳐 1968년 4월 행동강령을 채택한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총리로 임명되었다. 두브체크와 함께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고, 8월 침공 후 소련에 연행되어 모스크바 의정서에 서명했다. 귀국 후 개혁 지속을 약속했으나, 후사크 체제 아래 1970년 해임·제명되고 20년간 연구소 부소장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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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오스트라바 광산 노동자 가정에서 출생, 선반공으로 일함
  • 1945~49KSČ 입당, 오스트라바 고등광산학교 졸업
  • 1956~60KSČ 중앙위원회 서기
  • 1960~63연료·에너지 장관
  • 1963~68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의장
  • 1968.4~70.1체코슬로바키아 총리: 행동강령, 프라하의 봄, 모스크바 의정서
  • 1970~71해임, KSČ 제명
  • 1970~89프라하 연구소 경제 부소장

루보미르 슈트로우갈

Lubomír Štrougal

18년간 '정상화' 내각을 이끈 후사크의 오른팔

정치적 패배의 이유를 묻자, 슈트로우갈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반체제 인사들을 과소평가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정치인으로, 1970년 1월 올드르지흐 체르니크를 대신해 총리에 오른 뒤 18년간 '정상화' 내각을 이끌었다. 법학을 전공하고 농업장관과 내무장관을 거친 당 관료였으며, 프라하의 봄 시기 부총리를 지내다 소련 침공 후 후사크의 반개혁 노선에 합류했다. 19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며 강경파 야케시 당 총서기와 충돌해 실각했고, 벨벳 혁명 후 KSČ에서 제명되었다. 말년에는 국경 사망 사건으로 기소되었으나 치매로 중단된 채 2023년 98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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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4베셀리나트루주니치 출생, 부친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한 공산주의자
  • 1945~48KSČ 입당, 카렐대학교 법학 졸업
  • 1959~61농업·임업·수자원 장관
  • 1961~65내무장관, 국가보안(StB) 관할
  • 1968체르니크 내각 부총리 겸 경제위원회 의장
  • 1968.11~70.1KSČ 중앙위 서기·상임위원, 후사크의 '정상화' 노선 합류
  • 1970.1~88.10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총리, 18년 재임
  • 1988~90야케시와 충돌 후 사임, 벨벳 혁명 후 KSČ 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