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 프로보르크에서 태어나 언론인으로 일했고, 좌파 자유주의 정당을 거쳐 1918년 독일민주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바이마르 국민의회와 프로이센 주의회 의원을 지냈다. 나치 집권 뒤 반대파에 섰고 1944년 암살 기도 뒤 숨어 지냈다. 1945년 소련 점령지구에서 기독교민주연합을 함께 세웠고, 1947년 카이저와 레머가 소련 군정청에 의해 해임되자 대표 대행을 거쳐 1948년 대표가 되었다. 독일인민평의회 공동의장으로 동독 헌법 초안에 참여했고, 1949년 부총리 겸 교회청장이 되었다. 사회주의통일당 정권을 충실히 지지하며 따르지 않는 당원을 밀어냈다. 1957년 죽었다.
부르크에서 사회민주당원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무두장이로 일했고, 1차 세계대전에 반대해 사회민주당을 떠났다. 독립사회민주당을 거쳐 공산당에 들어갔고 마그데부르크·동프로이센 지구 지도자를 지냈다. 1933년 체포되었다가 탈옥해 망명했고, 소련에서 자유독일 국민위원회에 참여했다. 1945년 아커만 그룹과 함께 돌아와 1946년까지 작센 공산당 제1서기를 지냈다. 1948년부터 죽을 때까지 사회주의통일당 중앙당통제위원회 위원장으로 당 규율을 맡았고 정치국원·인민의회 부의장을 지냈다. 1953년 봉기 뒤 정치국 다수가 울브리히트를 내치려 할 때 호네커와 함께 그의 편에 섰다. 1971년 동베를린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