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9월 8일 휴전이 발표됐을 때, 바돌리오 정부는 로마를 떠나 연합군의 보호를 찾아 남쪽으로 향했다.
피에트로 바돌리오는 이탈리아 왕국의 군인이자 식민지 전쟁의 지휘관으로, 리비아와 에티오피아에서 제국의 폭력을 집행했다. 그는 무솔리니 체제의 핵심 군사 관료였지만, 1940년 그리스 전역의 실패 뒤 사임하고 왕실의 정권 교체에 참여했다. 1943년 무솔리니 축출 뒤 총리가 되어 연합국과 휴전협정을 체결했으나, 발표와 군 지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독일군의 무장해제와 이탈리아 국가의 붕괴를 막지 못했다.
비토리오 암브로시오는 이탈리아 왕국의 기병 장교 출신 장군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이탈리아의 유고슬라비아 침공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1943년 이탈리아군 최고사령관이 된 그는 북아프리카와 시칠리아의 패배 뒤 독일과의 동맹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왕과 군부를 중심으로 무솔리니의 실각과 연합국과의 휴전을 추진했다. 그의 선택은 파시즘을 넘어선 민주적 단절이라기보다 왕정과 군 지휘부가 국가의 전쟁 이탈을 관리하려 한 것이었으며, 9월 휴전은 독일군의 이탈리아 점령과 이탈리아군의 혼란을 막지 못했다.
1943년 9월 3일 카시빌레의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해 휴전 문서에 서명했다.
주세페 카스텔라노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이탈리아 왕국군의 참모 장교로 활동한 장군이었다. 1943년 무솔리니 축출 과정에 관여한 그는 바돌리오 정부의 특사로 연합군과 휴전 조건을 협상했다. 카시빌레 휴전은 이탈리아의 대독 전쟁을 끝냈지만, 비밀 협상과 지휘부의 혼선 속에 체결되어 군대에 명확한 명령을 남기지 못했다. 전후 그는 시칠리아 군사 지휘관을 거쳐 회고록으로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