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권 아래에서 추축동맹의 출구를 설계한 장군
“추축국은 포위된 고리 안에 있다. 빠져나와야 한다.”
비토리오 암브로시오는 이탈리아 왕국의 기병 장교 출신 장군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이탈리아의 유고슬라비아 침공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1943년 이탈리아군 최고사령관이 된 그는 북아프리카와 시칠리아의 패배 뒤 독일과의 동맹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왕과 군부를 중심으로 무솔리니의 실각과 연합국과의 휴전을 추진했다. 그의 선택은 파시즘을 넘어선 민주적 단절이라기보다 왕정과 군 지휘부가 국가의 전쟁 이탈을 관리하려 한 것이었으며, 9월 휴전은 독일군의 이탈리아 점령과 이탈리아군의 혼란을 막지 못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898기병 장교로 임관
- 1911–1913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참전
- 1915–1918제1차 세계대전 참전, 카포레토 후퇴 엄호
- 1941제2군 사령관, 유고슬라비아 침공 지휘
- 1942육군 참모총장
- 1943.02–11군 최고참모총장, 무솔리니 실각과 연합국 휴전 추진
- 1943.11육군 감찰총감으로 좌천
관련 역사 사건
1943년 휴전 협상의 군사 조건
1943년 7월 19일 펠트레에서 열린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회담에서 이탈리아 최고사령부 참모총장 암브로시오는 독일군 총참모장 빌헬름 카이텔에게 동부전선의 상황을 물었다. 그는 독일이 소련군을 소모시키기만 할 뿐 작전 주도권을 포기했다고 비판하고, 추축국이 포위된 상황에서 빠져나올 전망이 있는지 따졌다. 이 발언은 독일과의 동맹을 계속할 수 없다는 그의 판단이 9월 휴전 직전의 급변이 아니라 전쟁 상황에 대한 공개적 평가와 결부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연합군과의 접촉은 군사적 조건을 둘러싼 협상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9월 8일 보고서에 따르면, 암브로시오는 주세페 카스텔라노와 함께 이탈리아 측의 두 번째 특사인 주세페 차누시 장군을 연합군 본부에 보냈다. 8월 31일 시칠리아의 페어필드에서 연합군 참모총장 월터 베델 스미스와 만난 차누시와 카스텔라노는 독일군이 이미 19개 사단에 이르렀다는 점을 들어, 연합군이 로마 이북에 상륙하지 않는 한 이탈리아 측은 문서에 서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로마의 비행장에 연합군 공수부대가 투입되면 이탈리아군이 상륙에 저항하지 않고 비행장 장악을 돕겠다고 제안했다.
연합군은 즉시 서명을 요구하면서 로마 지역 공수작전을 검토했다. 이탈리아 대표들이 귀국한 뒤 9월 1일 연합군 본부는 로마 지역에 공수부대를 투입한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9월 3일 카스텔라노는 시칠리아 카시빌레에서 휴전 조건에 서명했다. 암브로시오가 주도한 접촉은 이탈리아의 이탈을 독일군의 보복과 연합군 상륙 위험 속에서 성사시키려는 군사 협상이었으며, 연합군의 로마 상륙 보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