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카스텔라노

Giuseppe Castellano
이탈리아 국가기관 이탈리아 이탈리아계 1893–1977 ○ 자연사

불완전한 전환을 서명한 장군

1943년 9월 3일 카시빌레의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해 휴전 문서에 서명했다.

주세페 카스텔라노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이탈리아 왕국군의 참모 장교로 활동한 장군이었다. 1943년 무솔리니 축출 과정에 관여한 그는 바돌리오 정부의 특사로 연합군과 휴전 조건을 협상했다. 카시빌레 휴전은 이탈리아의 대독 전쟁을 끝냈지만, 비밀 협상과 지휘부의 혼선 속에 체결되어 군대에 명확한 명령을 남기지 못했다. 전후 그는 시칠리아 군사 지휘관을 거쳐 회고록으로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비밀 협상 사절단과 발표일 오판, 1943년 8월

1943년 8월 12일, 참모총장 비토리오 암브로시오는 측근인 카스텔라노에게 연합국과의 접촉 임무를 맡겼다. 지시는 이탈리아의 군사 상황을 설명하고 연합국의 의도를 듣되, 특히 "독일로부터 이탈하려면 연합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스텔라노는 중립국까지 기차로만 이동하도록 허용되어 마드리드까지 사흘, 다시 리스본까지 사흘이 걸렸고, 8월 19일에야 연합국 사령부 대표들과 회담했다. 그는 영어를 하지 못해 리스본 영사 프랑코 몬타나리를 통역으로 데리고 다녔다. 8월 23일에 리스본을 떠나 27일 로마에 도착했으니 임무에만 보름이 걸린 셈이었다. 그가 로마로 돌아간 직후 로시와 자누시 두 장군이 비행기로 리스본에 파견되어 연합국 대표들 앞에 나타났고, 이렇게 시차를 두지 않은 사절단 파견은 연합국을 혼란스럽게 했다. 연합국은 세 이탈리아 장군 가운데 누구에게 가장 큰 권한이 있는지를 두고 어느 정도 논쟁을 벌인 끝에 카스텔라노를 상대로 받아들였다. 회담 자리에는 주포르투갈 영국 대사 로널드 캠벨과 아이젠하워가 보낸 월터 베델 스미스, 케네스 스트롱이 있었다.

휴전 문서에 서명한 뒤 연합국은 카스텔라노를 시칠리아에 붙잡아 두었고, 발표 날짜를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아이젠하워는 발표 하루 전에도 그 정보를 전하지 않았다. 카스텔라노는 마르케시 소령과 조종사 바살로 편에 암브로시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주면서 발표일이 9월 10일에서 15일 사이, 아마도 9월 12일(자신의 50번째 생일)이 될 것이라고 적었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였다. 휴전은 9월 8일 라디오 알제리를 통해 아이젠하워의 이름으로, 이어 바돌리오의 방송으로 공표되었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군 대부분은 휴전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고 독일군에 맞서야 할 행동 지침도 받지 못했으며, 국왕과 바돌리오는 9월 9일 새벽 로마를 떠나 브린디시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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