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활동과 국가·세력

인물이 수행한 활동과 그 활동에서의 소속을 함께 찾습니다.

국가·세력·조직

나라별 전체 소속 112개에서 고르기

국제조직

그레나다

그리스

기니비사우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한민국

독일

동독

라오스

라트비아

러시아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모잠비크

몽골

미국

베트남

벨기에

불가리아

브라질

소련

스페인

아제르바이잔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앙골라

에스토니아

에티오피아

영국

예멘

오스트레일리아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

체코슬로바키아

카자흐스탄

캄보디아

콩고-브라자빌

콩고민주공화국

쿠바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헝가리

정치·당 지도 · 몽골 인물 5명

조건 모두 해제

단잔

Данзан
정치·당 지도 몽골 몽골 몽골 1885–1924 ✕ 총살 · 1962년 복권

초대 당 의장에서 '부르주아'로 몰려 처형된 창당 공신

1924년 8월 제3차 당대회에서 체포된 그는,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하루도 못 되어 재판을 받고 총살당했다.

1919년 몽골인민당 창립에 참여했고, 1921년 혁명 뒤 초대 중앙위원회 의장과 재무장관을 지내며 초기 인민정부 수립을 이끌었다. 1922년 총리 보도를 숙청·처형하는 데 앞장섰다. 제한된 자본주의와 소련 고문 축소를 주장하다 코민테른 좌파와 충돌했고, 1924년 8월 제3차 당대회에서 부르주아로 몰려 하루 만에 체포·총살됐다. 그 숙청이 당을 비자본주의 노선과 공화국으로 돌려세우는 분수령이 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919'동(東) 후레' 그룹 결성, 몽골인민당 창당 참여
  • 1920모스크바 방문 대표단으로 레닌 접견
  • 1921제1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의장 선출 (3–9월)
  • 1921–1922재무장관
  • 1922보도 총리의 숙청·처형 주도
  • 1923중앙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
  • 1924제3차 당대회에서 '부르주아'로 규탄·처형

엘벡도르지 린치노비치 린치노

Элбек-Доржи Ринчинович Ринчино
정치·당 지도 몽골 소련 러시아 (부랴트) 1888–1938 ✕ 총살(선고일 · 집행지 · 시점 사료 상충)

부랴트 혁명가, 1924년 몽골 헌법 초안 작성자, 대숙청 피해자

1924년 8월 제3차 당대회에서 좌파 지도자로서 담바도르지가 이끄는 우파와 함께 단잔을 '부르주아 이익 대표·미국·중국 회사와의 거래'로 고발했고, 단잔과 바바산 등은 대회가 계속되는 동안 24시간 안에 재판·사형·총살됐다.

자바이칼 부랴트 출신으로 1917년 4월 부랴트-몽골 중앙민족위원회(부르나츠콤) 초대 의장이 되어 부랴트 자치의 기초를 놓았고, 1920년 코민테른 극동서기국 몽골-티베트 부서 서기로 몽골 혁명가들과 협력했다. 1921년 혁명 뒤 1925년까지 몽골 혁명군사평의회 의장과 정부 고문, 몽골인민당 중앙위 상무위원, 대·소후랄 의원을 지냈으며, 1924년 헌법 초안 작성자 중 한 명이고 제3차 당대회에서 비자본주의 발전 노선을 정당화했으나 같은 대회에서 단잔 고발에 가담했다. 1937년 6월 19일 모스크바에서 체포돼(수감 기록에는 7월 19일로 기재) 1938년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선고일과 처형 시점·장소는 사료마다 엇갈린다. 1955년 재심이 개시돼 1957년 복권됐다.

상세 이력 보기
  • 1917부랴트-몽골 중앙민족위원회(부르나츠콤) 초대 의장 선출
  • 1918시베리아 임시정부 교육장관에 서면 선출
  • 1920코민테른 극동서기국 몽골-티베트 부서 서기
  • 1921–1925몽골 혁명군사평의회 의장·정부 고문·몽골인민당 중앙위 상무위원·대후랄 및 소후랄 의원
  • 1924헌법 초안 작성 참여, 제3차 당대회에서 단잔 고발
  • 1926–1930적색교수연구소 수학
  • 1927–1934동방노동자공산주의대학(KUTV)에서 연구·교육 활동, 1934년 11월부터 정치경제학 교수
  • 1937모스크바에서 체포

초이발산

Чойбалсан
정치·당 지도 몽골 몽골 몽골 1895–1952 ○ 자연사

몽골 혁명과 권력 집중

1945년 8월 스탈린에게 보낸 축전에서, 몽골과 소련 인민의 우정은 영원히 불멸하리라고 다짐했다.

몽골의 1921년 혁명에 참여한 군사·정치 지도자다. 소련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권력을 집중했고 1930년대 후반 대규모 숙청을 이끌었다. 그의 지도기는 국가 기반 형성과 정치·종교적 억압을 함께 살펴야 하는 시기다.

상세 이력 보기
  • 1924–1928인민혁명군 총사령관
  • 1928–1930소후랄 상임위원회 의장
  • 1930외무장관
  • 1935–1939제1부수상
  • 1936몽골 인민공화국 원수 칭호
  • 1939–1952수상 (정부 수반)
  • 1939할힌골 전투에서 몽골군 지휘

체덴발

Цэдэнбал

몽골의 계획경제와 대소 관계

몽골과 소련의 관계를 '큰 형과 작은 동생'(ах дүү) 관계로 규정했던 그는 1953년 스탈린 장례식에서 소련 편입을 청했으나 모스크바는 거절했다.

초이발산 사후 1952년 몽골 정부 수반이 된 지도자다. 소련과의 정치·경제적 연계를 바탕으로 산업화와 협동목축을 추진했다. 장기 집권은 근대화 정책과 당내 반대파 배제, 대외 의존이라는 문제를 함께 남겼으며 1984년 권좌에서 물러났다.

상세 이력 보기
  • 1939몽골인민혁명당에 입당하고 재무차관이 되었다.
  • 1940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선출(당내 2인자).
  • 1941–1945인민군 정치국장 겸 부사령관.
  • 1945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 1952–1974각료회의 의장(정부 수반).
  • 1958–1984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재취임(1981년 총비서 칭호).
  • 1974–1984인민대후랄 상임위원회 위원장(국가원수) 겸 인민군 총사령관.
  • 1979몽골인민공화국 원수 칭호를 받았다.

담바도르지

Дамбадорж
정치·당 지도 몽골 몽골 몽골 ?–1934 모스크바에서 사망, 중독 의혹 미확인

단잔 숙청에 가담하고 우경으로 몰려 밀려난 몽골인민혁명당 지도자

1924년 제3차 당대회에서 린치깅 엘베그도르지와 함께 솔린 단잔을 부르주아 세력으로 몰아 체포·처형했고, 그 뒤 당 우파를 이끌며 신경제정책을 본뜬 노선을 폈다.

몽골의 혁명가이자 언론인으로, 1921년 제1차 당대회에서 몽골인민당 중앙위원회에 선출되어 서기와 부의장을 지냈고 1923~1928년에는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의장을 맡았다. 1924년 제3차 당대회에서 좌파의 린치깅 엘베그도르지와 함께 온건파 솔린 단잔을 부르주아로 몰아 체포·처형하는 데 가담했고, 이후 당 우파를 이끌며 신경제정책을 본뜬 노선을 폈다. 1928년 제7차 당대회에서 '우경'으로 제명되어 모스크바 주재 몽골 대사관 무역대표로 밀려났으며 1934년 6월 그곳에서 사망했다. 『아르딘 에르흐』, 『위넨』과 잡지 『몽골 아르딘 남』의 초대 편집인이자 엥겔스의 번역자이기도 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8–1920나이슬레l 후레와 히악트에서 전신·철도 통신 노동자
  • 1920가을부터 애국자 운동에 참여
  • 1921제1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선출, 임시정부 대외관계부 관료; 3월 중앙위원회 대행 의장
  • 1921–1923중앙위원회 서기; 1922년 1~3월 부의장, 3월 15일~1923년 1월 12일 의장
  • 1921서부 국경 담당 전권 대표로 백위군과 싸우고 서부 국경 정부·인민당 위원회 수립에 참여
  • 1924–1928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의장 (1924년 8월 31일~1928년 10월 27일)
  • 1928–1929소련 주재 몽골 대사관 무역대표; 1929~1932년 모스크바 국민경제고등학교 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