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벡도르지 린치노비치 린치노

Элбек-Доржи Ринчинович Ринчино
몽골 국가기관 마르크스-레닌주의 소련 러시아 (부랴트) 1888–1938 ✕ 총살(선고일 · 집행지 · 시점 사료 상충)

부랴트 혁명가, 1924년 몽골 헌법 초안 작성자, 대숙청 피해자

1924년 8월 제3차 당대회에서 좌파 지도자로서 담바도르지가 이끄는 우파와 함께 단잔을 ‘부르주아 이익 대표·미국·중국 회사와의 거래’로 고발했고, 단잔과 바바산 등은 대회가 계속되는 동안 24시간 안에 재판·사형·총살됐다.

자바이칼 부랴트 출신으로 1917년 4월 부랴트-몽골 중앙민족위원회(부르나츠콤) 초대 의장이 되어 부랴트 자치의 기초를 놓았고, 1920년 코민테른 극동서기국 몽골-티베트 부서 서기로 몽골 혁명가들과 협력했다. 1921년 혁명 뒤 1925년까지 몽골 혁명군사평의회 의장과 정부 고문, 몽골인민당 중앙위 상무위원, 대·소후랄 의원을 지냈으며, 1924년 헌법 초안 작성자 중 한 명이고 제3차 당대회에서 비자본주의 발전 노선을 정당화했으나 같은 대회에서 단잔 고발에 가담했다. 1937년 6월 19일 모스크바에서 체포돼(수감 기록에는 7월 19일로 기재) 1938년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선고일과 처형 시점·장소는 사료마다 엇갈린다. 1955년 재심이 개시돼 1957년 복권됐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언어·문자·민족지 연구

린치노의 정치 활동은 1917년 부르나츠콤 이전에 이미 부랴트 언어와 문자, 민족지 연구에서 출발했다.

1908년 가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그는 재학 중 부랴트어와 민속 자료를 수집했고, 그 가운데 일부를 ‘알람지-메르겐’이라는 필명으로 1911년 간행된 《몽골-부랴트 민요집》 제2집에 발표했다. 이 무렵 그는 보한 출신 교사 니콜라이 아마가예프와 함께 1905년 아그반 도르지예프가 만든 부랴트 문자를 다듬는 작업에 착수해, 개별 자모와 문법 형태를 교정한 끝에 1910년 《신 몽골-부랴트 문자》를 펴냈다.

학업을 중단한 뒤인 1915~1916년에는 몽골에 파견된 과학 탐사에 참여해 《몽골의 샤머니즘》과 《몽골의 경제 구역》을 저술했다. 그는 뒤에도 몽골 문자 개혁을 주제로 한 글을 남겼으며, 1930년에는 《몽골 부족의 문자 개혁에 관하여》, 《몽골 문어 개혁에 관하여》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