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랴트 혁명가, 1924년 몽골 헌법 초안 작성자, 대숙청 피해자
1924년 8월 제3차 당대회에서 좌파 지도자로서 담바도르지가 이끄는 우파와 함께 단잔을 '부르주아 이익 대표·미국·중국 회사와의 거래'로 고발했고, 단잔과 바바산 등은 대회가 계속되는 동안 24시간 안에 재판·사형·총살됐다.
자바이칼 부랴트 출신으로 1917년 4월 부랴트-몽골 중앙민족위원회(부르나츠콤) 초대 의장이 되어 부랴트 자치의 기초를 놓았고, 1920년 코민테른 극동서기국 몽골-티베트 부서 서기로 몽골 혁명가들과 협력했다. 1921년 혁명 뒤 1925년까지 몽골 혁명군사평의회 의장과 정부 고문, 몽골인민당 중앙위 상무위원, 대·소후랄 의원을 지냈으며, 1924년 헌법 초안 작성자 중 한 명이고 제3차 당대회에서 비자본주의 발전 노선을 정당화했으나 같은 대회에서 단잔 고발에 가담했다. 1937년 6월 19일 모스크바에서 체포돼(수감 기록에는 7월 19일로 기재) 1938년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선고일과 처형 시점·장소는 사료마다 엇갈린다. 1955년 재심이 개시돼 1957년 복권됐다.
경력 연표
- 1917부랴트-몽골 중앙민족위원회(부르나츠콤) 초대 의장 선출
- 1918시베리아 임시정부 교육장관에 서면 선출
- 1920코민테른 극동서기국 몽골-티베트 부서 서기
- 1921–1925몽골 혁명군사평의회 의장·정부 고문·몽골인민당 중앙위 상무위원·대후랄 및 소후랄 의원
- 1924헌법 초안 작성 참여, 제3차 당대회에서 단잔 고발
- 1926–1930적색교수연구소 수학
- 1927–1934동방노동자공산주의대학(KUTV)에서 연구·교육 활동, 1934년 11월부터 정치경제학 교수
- 1937모스크바에서 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