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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공화국 인물 6명

조건 모두 해제

파스칼 리수바

Pascal Lissouba
정부·행정 콩고공화국 콩고-브라자빌 콩고-브라자빌 (은제비족) 1931–2020 → 망명 중 사망

내전으로 축출된 과학자 출신 대통령

1977년 응구아비 암살의 공모 혐의로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가봉의 오마르 봉고가 개입해 총살형을 면했다.

농작물 유전학을 전공한 생물학자 출신 정치인으로, 1963년 32세에 마삼바데바 정권의 총리가 됐다. 콩고인민공화국 시절 응구아비 암살 연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석방돼 프랑스에서 망명했고, 1991년 주권 국민회의의 과도 총리 선거에서 초반 투표를 선두로 달리다 4차 투표에서 밀롱고에게 패했다. 1992년 사회민주주의 정당 UPADS를 이끌고 사수응게소를 꺾어 콩고 최초의 민주 선거 대통령이 됐으나, 1997년 내전에서 패해 다시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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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6튀니스 고등농업학교 졸업, 농업공학사
  • 1961파리대학 이학박사, ORSTOM 연구원
  • 1963–1966마삼바데바 정권 총리 (농업장관 겸임)
  • 1966–1970유전학 교수, 이학원장
  • 1977응구아비 암살 연루로 사형 선고 후 종신형 감형
  • 1979–1990프랑스 망명, UNESCO 과학부문 국장
  • 1991범아프리카사회민주연합(UPADS) 창설
  • 1992–1997대통령, 1997년 내전 패배로 축출

앙드레 밀롱고

André Milongo
정부·행정 콩고공화국 콩고-브라자빌 콩고-브라자빌 1935–2007 ○ 자연사

과도기를 이끈 세계은행 출신 기술관료

2002년 대선을 이틀 앞두고 후보직을 사퇴하며 '투표의 투명성 조건이 보장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독립 직후 콩고의 첫 국고총감을 지낸 재정 기술관료로, 이후 세계은행 이사를 거치며 국제금융계에 몸담았다. 일당체제가 무너지는 1991년 주권 국민회의에서 4차 투표 끝에 과도 총리로 선출되어 집행권을 받고 다당제 선거까지 이끌었다. 과도기를 마친 뒤 민주공화연합(UDR-Mwinda)을 창설해 드니 사수응게소 정권의 대표적 야당 인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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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국고총감(Trésorier Payeur Général) 취임
  • 1969–1973기획부 투자총국장
  • 1975–1976총리 경제·재정 고문
  • 1976–1983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이사
  • 1986–1990세계은행 이사
  • 1991민주공화연합(UDR-Mwinda) 창설
  • 1991–1992과도 총리
  • 1993–1997국회의장

마리앵 응구아비

Marien Ngouabi
정치·당 지도 콩고공화국 콩고-브라자빌 콩고-브라자빌 1938–1977 ✕ 암살

콩고인민공화국 수립

1970년 1월 취임식에서 응구아비는 콩고 인민과 혁명, 콩고노동당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브라자빌의 콩고를 이끈 군인·정치가다. 1969년 콩고노동당과 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이끌어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당 체제를 조직했다. 1977년 암살 뒤 군부·당 내부의 권력 재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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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국민혁명평의회 수장으로 쿠데타 집단을 이끔
  • 1968–1977콩고 대통령
  • 1969콩고노동당 창당
  • 1969국호를 콩고인민공화국으로 개칭, 아프리카 최초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 선포
  • 1974콩고노동당 중앙위원회 의장 재선

에르네스트 콤보

Ernest Kombo
종교 소속 미확정 콩고-브라자빌 콩고-브라자빌 1941–2008 ○ 자연사

국민회의를 이끈 오완도 주교

1991년 주권 국민회의는 스스로 주권을 선언하며 콩고인민공화국을 폐지하고 과도 통치의 기본법을 채택했다.

예수회 신부 출신의 콩고 가톨릭 주교로, 응카이와 오완도 교구를 이끌었다. 일당체제가 무너지는 1991년 주권 국민회의의 의장(프레지디움 의장)에 선출되어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가 스스로 주권을 선언하며 콩고인민공화국을 폐지하자, 그는 국민의회를 대체한 과도 최고공화국평의회(CSR) 의장을 맡아 헌법 전환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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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브라자빌에서 사제 서품(예수회)
  • 1983응카이 교구 초대 주교
  • 1986–1990포앵트누아르 교구 사도좌 관리자
  • 1990오완도 교구 주교
  • 1991주권 국민회의 프레지디움 의장
  • 1991과도 최고공화국평의회(CSR) 의장
  • 2003–2006콩고 주교회의 의장

드니 사수응게소

Denis Sassou Nguesso

콩고노동당과 석유국가

우리 민족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우리 나라가 완전히 독립할 수 없습니다.

콩고노동당의 군인 출신 지도자로 국방장관을 거쳐 1979년 대통령이 됐다. 일당 체제의 국가 운영과 석유 수입에 기반한 개발계획을 이끌었다. 1991년 국민회의와 다당제 전환은 그의 첫 집권기의 권력 구조를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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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응가비 집권 군사 쿠데타 참여, 국가혁명위원회 창립 위원
  • 1973국가보안국장
  • 1975국방·보안장관(32세)
  • 1977콩고노동당 군사위원회 제1부위원장
  • 1979콩고 인민공화국 대통령 취임
  • 1986–1987아프리카통일기구(OAU) 의장
  • 1997제2차 내전으로 재집권, 대통령 취임
  • 2002새 헌법 아래 대선 승리(89.4%)

스테판 모리스 봉고누아라

Stéphane Maurice Bongho-Nouarra
정부·행정 콩고공화국 콩고-브라자빌 콩고-브라자빌 1936/1937–2007 ○ 브뤼셀에서 사망

1992년 다당제 헌정 아래 임명된 콩고의 총리

1992년 9월 2일 총리로 임명되어 9월 7일 내각을 구성했으나, 10월 31일 PCT-URD 연합의 불신임으로 정부가 무너졌다.

콩고 공화국(브라자빌)의 정치가이다. 1960년대 후반 각료를 지내다 1970년 반정부 음모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고문당했으며, 1971년 건강 악화로 석방돼 프랑스로 망명했다. 1990년 다당제 도입과 함께 귀국해 1991년 주권국민회의 부의장단에 참여했고, 1992년 9월 2일 파스칼 리수바 대통령이 총리로 임명했다. 10월 31일 콩고노동당(PCT)과 민주갱신연합(URD)의 불신임으로 11월 11일 사임했고, 1997년 내전 중 벨기에로 망명해 2007년 10월 7일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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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1965경제사회이사회 의장
  • 1966대통령부 농업담당 국무장관
  • 1968농업부 장관
  • 1969–1970공공사업·주택·교통부 장관, 은구아비에 의해 해임
  • 1970–1971반정부 음모 혐의로 징역 10년 선고, 수감
  • 1971–1977프랑스에서 망명
  • 1991주권국민회의 부의장단 참여(에르네스트 콩보 의장)
  • 1992음바마(쿠베트우에스트) 선거구 국회의원 당선
  • 1992총리 (9월 2일–12월 6일)
  • 1990년대 후반대통령 특별보좌관(국무장관급), 사회문화위원회 위원장, 국방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