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밀롱고

André Milongo
콩고공화국 국가기관 콩고-브라자빌 콩고-브라자빌 1935–2007 ○ 자연사

과도기를 이끈 세계은행 출신 기술관료

2002년 대선을 이틀 앞두고 후보직을 사퇴하며 ‘투표의 투명성 조건이 보장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독립 직후 콩고의 첫 국고총감을 지낸 재정 기술관료로, 이후 세계은행 이사를 거치며 국제금융계에 몸담았다. 일당체제가 무너지는 1991년 주권 국민회의에서 4차 투표 끝에 과도 총리로 선출되어 집행권을 받고 다당제 선거까지 이끌었다. 과도기를 마친 뒤 민주공화연합(UDR-Mwinda)을 창설해 드니 사수응게소 정권의 대표적 야당 인물로 남았다.

다른 이름: 앙드레 은차투아반투 밀롱고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91년 주권국민회의의 과도 총리 선출

1991년 주권국민회의는 2월 25일부터 6월 10일까지 브라자빌에 모여 1979년 헌법을 폐기하고 과도기를 규율할 기본법을 채택했다. 1,202명의 대의원 가운데 67개 정당과 134개 단체 대표가 참여했고, 회의는 스스로 주권을 선언해 사수응게소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킨 뒤 인민대의회를 대신할 상급평의회를 구성하고 각료를 임명·파면할 수 있는 과도 총리직을 신설했다. 이 자리를 두고 6월 8일 비밀투표가 시작되었고 개표는 공개·즉시 진행되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다. 1차에서 리수바 285표, 밀롱고 197표, 보킬로 110표였고 3차에서 밀롱고는 바바카스의 지지로 419표까지 올라 387표의 리수바를 앞질렀으며, 마지막 투표에서 454표 대 419표로 과도 총리를 확정했다. 그를 밀어낸 것은 옛 집권세력과 결부된 리수바에 맞선 연합이었고, 일주일 뒤 구성된 그의 정부에는 콩고노동당(PCT)이 장관직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1991년 6월 과도 총리로 취임한 그는 집행권과 함께 국방, 광업·에너지 장관직을 맡아 1992년 다당제 선거까지 개헌 작업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