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모리스 봉고누아라

Stéphane Maurice Bongho-Nouarra
콩고공화국 국가기관 콩고-브라자빌 콩고-브라자빌 1936/1937–2007 ○ 브뤼셀에서 사망

1992년 다당제 헌정 아래 임명된 콩고의 총리

1992년 9월 2일 총리로 임명되어 9월 7일 내각을 구성했으나, 10월 31일 PCT-URD 연합의 불신임으로 정부가 무너졌다.

콩고 공화국(브라자빌)의 정치가이다. 1960년대 후반 각료를 지내다 1970년 반정부 음모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고문당했으며, 1971년 건강 악화로 석방돼 프랑스로 망명했다. 1990년 다당제 도입과 함께 귀국해 1991년 주권국민회의 부의장단에 참여했고, 1992년 9월 2일 파스칼 리수바 대통령이 총리로 임명했다. 10월 31일 콩고노동당(PCT)과 민주갱신연합(URD)의 불신임으로 11월 11일 사임했고, 1997년 내전 중 벨기에로 망명해 2007년 10월 7일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91년 주권국민회의와 부의장단

1990년 7월 4일 콩고노동당(PCT) 중앙위원회가 다당제와 마르크스-레닌주의 포기를 공식 인정하고, 같은 해 9월 30일에는 즉각적인 다당제 도입과 국민회의 소집을 결정하면서 단일정당체제가 공식 폐기되었다. 1991년 2월 25일 브라자빌에서 개막해 6월 10일까지 이어진 주권국민회의에는 정당·노조·시민사회·군·종교계 대표 1,202명이 참여했고, 회의는 스스로 주권을 선언하며 기존 국가기구보다 높은 권한을 주장했다. 봉고누아라는 이 회의의 지도부에 들어갔다. 3월 15일 오완도 주교 에르네스트 콩보를 의장으로 하는 부의장단이 구성되었을 때 그는 클로드에르네스트 은달라, 시몽피에르 키쿵가응고와 함께 콩보를 보좌하는 인물로 이름을 올렸고, 영어권 기록은 그를 회의의 제2부의장으로 적는다. 회의는 드니 사수응게소 대통령의 대통령 권한을 파면하지 않은 채 정지시키고 공화국의 상징을 복원했으며, 6월 4일에는 과도기의 통치 규칙을 정한 기본법을 채택했다. 과도정부 총리 선출에서는 초반 투표에서 앞서던 파스칼 리수바를 제치고 4차 투표에서 앙드레 밀롱고가 선출되었다. 회의는 또한 PCT와 그 지도부의 정치적 책임을 집중적으로 심의해 사수응게소를 부패와 정치적 범죄의 책임자로 지목하고 국가에 10억 CFA프랑의 배상을 요구했다. 이 과도기 구도가 1992년 총선과 대선의 통로가 되었고, 그 결과 봉고누아라 자신이 총리로 임명되는 조건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