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의 웨일스인 집안에서 태어나 급진 자유주의 웅변가로 이름을 얻었다. 재무장관으로 1909년 「인민 예산」과 국민보험법을 내 복지국가의 토대를 놓았다. 군수장관과 육군장관을 거쳐 1916년 12월 총리가 되었다. 파리 강화회의에서는 독일 경제를 무너뜨릴 막대한 배상에 반대하고 프랑스의 패권을 견제했다. 1921년 영국-소련 무역협정을 맺고 아일랜드 자유국 수립을 협상했으나 1922년 보수당이 연립에서 빠지자 사임했다. 1936년 히틀러를 만나 찬양하기도 했다. 1945년 죽었다.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킹스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1915년 재무부에 들어가 연합국 간 신용 조건을 설계했다. 파리 강화회의에서는 독일의 배상액을 지불 능력을 넘지 않게 하려 했으나 고위 협상에서 대부분 밀려났고, 조약에 실망해 재무부를 떠났다. 1919년 『평화의 경제적 귀결』로 조약의 해악을 예측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대공황 속에서 유효수요가 경제활동 수준을 정한다고 보고 재정·통화 정책으로 불황에 맞설 것을 주장했으며, 1936년 『일반이론』을 냈다. 1944년 브레턴우즈 협상에서 영국 대표단을 이끌었으나 미국안에 밀렸다. 1946년 심장마비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