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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수행한 활동과 그 활동에서의 소속을 함께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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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인물 130명

팡리즈

方励之
과학·기술 소속 미확정 중국 중국 1936–2012 → 망명 1990 · 자연사

「중국의 사하로프」, 1986년 학생 시위와 1989년 미국 대사관 피신으로 알려진 천체물리학자

“사상의 억압이 과학과 사회를 함께 해친다”라고 주장한 천체물리학자이자 중국의 반체제 지식인.

베이징 출신 천체물리학자로 1957년 우파로 몰렸다가 복권되어 중국과학기술대학 부총장이 되었다. 1986년 강연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권위와 당의 지도를 공개 비판해 그해 말 학생 시위의 정신적 지주로 지목되었고, 1987년 당적 박탈과 함께 후야오방 실각의 빌미가 되었다. 1989년 1월 덩샤오핑에게 웨이징성 석방을 청원하는 공개서한을 보냈고, 6월 4일 진압 뒤 아내 리수셴과 미국 대사관에 피신해 13개월을 보낸 뒤 출국이 허용되었다. 애리조나대학 교수로 지내다 2012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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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1987중국과학기술대학 부총장

니콜라이 막시모비치 포민

Николай Максимович Фомин

파괴된 원자로를 인정하지 않고 물을 주입시킨 최종 기술책임자

그는 재판을 앞두고 안경을 깨뜨려 그 파편으로 손목을 그었다. 법정은 한 번 연기되어야 했다.

니콜라이 포민은 1972년 체르노빌 원전에 입사하여 1981년 주임기사로 승진한 소련의 원자력 기술자였다. 1986년 4월 26일 폭발 직후 현장에 도착한 그는 원자로가 파괴되었다는 보고를 끝내 믿지 않고, 파손된 4호기에 수시간 동안 냉각수를 계속 주입하도록 강행했으며 부하 직원을 치사량의 방사선에 노출되는 정찰 임무에 보냈다. 사고 후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재판 전 자살 시도와 정신병원 수용 끝에 조기 석방되었고 이후 칼리닌 원전에서 근무하다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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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체르노빌 원전 입사
  • 1981–1986체르노빌 원전 주임기사
  • 198710년 노동교화형 선고, 수감
  • 1988정신병원 이송, 조기 석방
  • 1990s–2000s칼리닌 원전 근무
  • mid-2000s은퇴, 우도믈랴 거주

발렌티나 블라디미로브나 테레슈코바

Валентина Владимировна Терешкова

직공 출신 첫 여성 우주인, '차이카'

발사대 앞에서: 「에이, 하늘! 모자 벗어!」 — 마야콥스키의 시구를 외치며, 1963년 6월 16일.

1963년 보스토크 6호로 세계 최초 여성 단독 우주비행. 직물 공장 여공 출신으로 71시간 49바퀴를 홀로 비행하며 프롤레타리아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된 '차이카'. 후에 러시아군 최초 여성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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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60타이어 공장·직물 공장 노동자, 야간학교·통신기술학교 졸업
  • 1959–61야로슬라블 비행클럽 낙하산 훈련 (90회)
  • 1962.3여성 우주비행사단 선발 (5인)
  • 1963.6.16–19보스토크 6호: 첫 여성 우주비행, 71시간 단독비행
  • 1966–89소비에트 최고회의 대의원, 간부회의 위원 (1974–89)
  • 1968–87소비에트 여성위원회 위원장
  • 1969주콥스키 공군공학아카데미 우등 졸업, 기술과학 후보·교수
  • 1971–90CPSU 중앙위원회 위원
  • 1987–92소비에트 해외우호문화교류협회연합 의장
  • 2011–현재통합러시아당 국가두마 의원
  • 1995/2025소장·중장 진급: 러시아군 최초 여성 장군

이리나 바야노브나 솔로비요바

Ирина Баяновна Соловьёва

테레슈코바의 예비 우주비행사, 카마닌이 신체적 최고라 했지만 대중역할엔 내성적이었던 낙하산 국가대표

「우리는 해볼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 비밀경찰로부터 우주비행사단 입단 제의를 받고, 약혼자와 함께 단골 카페에서 문 닫을 때까지 고민한 끝에.

우랄 공과대학을 졸업한 기계공학자이자 국가대표 낙하산 선수로, 1962년 소련 최초 여성 우주비행사단 5인에 선발되었다. 1963년 보스토크 6호 비행에서 발렌티나 테레슈코바의 주예비 비행사로 훈련받았으며, 니콜라이 카마닌은 그녀를 신체적으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했으나 대외 선전에 필요한 외향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포노마료바와 함께 보스호트 계획 최초 여성 우주유영 임무를 준비했으나 계획 취소로 무산되었고, 1969년 여성 비행사단 해체 후 우주비행사훈련센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심리학 후보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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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59우랄 공과대학 건설학부 졸업, 기계공학 전공
  • 1955–62국가대표 낙하산 선수, 스포츠 마스터(1959), 약 700회 강하
  • 1959–62우랄에네르고몬타주 설계국 엔지니어
  • 1962.3여성 우주비행사단 선발, 우주비행사 훈련 이수
  • 1963.5보스토크 6호 테레슈코바의 주예비 비행사
  • 1964–67주콥스키 공군공학아카데미 졸업, 조종사-우주비행사-기사 자격
  • 1966포노마료바와 보스호트 여성 우주유영 임무 훈련 (취소)
  • 1969–91우주비행사훈련센터 연구원·선임연구원, 심리학 후보학위(1980), 대령 퇴역

발레리 일리치 호뎀추크

Валерий Ильич Ходемчук
과학·기술 소련 국가기관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인 1951–1986 ✕ 폭발사

폭발 순간 펌프실에 있었고, 시신도 수습되지 못한 체르노빌의 첫 번째 희생자

폭발 직전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22번 펌프 하부 급수를 재충전해야 해… 좋아, 잠깐만…"이라고 말했다. 그게 그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키이우주 크라피브냐에서 태어나 1978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 입사해 주순환펌프(GCN) 운전원으로 일했다. 1986년 4월 26일, 4호기 안전시험 중 폭발이 일어났을 때 그는 북쪽 GCN 펌프실에 있었고, 건물 잔해에 매몰되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시신은 지금도 석관 내부 잔해 속에 남아 있으며, 3호기와 4호기 사이 격벽에는 그의 기념 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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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입사, 보일러 기사·선임 기사(열·지하통신 작업장)
  • 19784호기 주순환펌프(GCN) 운전원, 이후 제7그룹 수석 운전원
  • 1984노동영예훈장 3등급 수훈
  • 1986.04.264호기 안전시험 중 폭발, 북쪽 GCN 펌프실에서 순직
  • 1986.12명예휘장훈장 추서
  • 2008우크라이나 용기훈장 3등급 추서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샤셰노크

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Шашенок
과학·기술 소련 국가기관 소련 우크라이나 1951–1986 ✕ 사고사

원전 시운전과 사고 대응을 맡은 기술자

동료들이 무너진 계측실에서 그를 끌어냈지만, 그는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오전 6시 프리피야티 병원에서 숨졌다.

블라디미르 샤셰노크는 원자력발전소의 계측·자동화 설비를 조정하고 시험하던 기술자였다. 체르노빌 4호기 시험에 참여하던 중 폭발로 척추와 갈비뼈가 부러지고 중화상과 방사선 화상을 입었으며, 동료들에게 구조되어 프리피야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는 사고 당일 숨진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발전소의 기술 노동이 재난의 최전선에 놓였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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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코노토프 산업기술학교 졸업
  • 1970–1980산업·원자력 설비 분야 기술 업무
  • 1980–1984체르노빌 원전 계측·자동화 조정 및 시험 기술자
  • 1984–1986스몰렌스크아톰에네르고날라드카 소속 조정·시험 기술자
  • 1986체르노빌 4호기 시험 지원 중 사고로 사망

알렉산드르 표도로비치 아키모프

Александр Фёдорович Акимов
과학·기술 소련 국가기관 소련 러시아인 1953–1986 ○ 방사선 피폭

4호기 교대 감독관, 사고 당일 수습을 지휘하고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한 소련 원자력 기술자

「나는 모든 것을 옳게 했다.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노보시비르스크 출신의 소련 원자력 기술자로, 1976년 모스크바 전력공학연구소를 졸업하고 1979년 9월 체르노빌 원전에 입사해 1984년 7월 10일 4호기 교대 감독관이 되었다. 1986년 4월 26일 야간 안전시험에서 그가 원자로 정지를 지시했고 01시 23분 39초에 AZ-5 버튼이 눌렸으나 실제로 누른 사람은 증언이 엇갈려 분명하지 않다. 폭발 후 약 8시까지 4호기에 남아 소방대와 구급대를 부르고 급수 계통 밸브를 수동으로 열게 했으며, 15Gy를 넘는 치명적 피폭을 받았다. 급성 방사선 증후군으로 1986년 5월 11일 모스크바 제6병원에서 33세로 사망했고, 일부 영어권 출처는 5월 10일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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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6모스크바 전력공학연구소 졸업 (열·전력 공정 자동화 전공)
  • 1979–1984체르노빌 원전: 선임 터빈 관리 기술자, 터빈 공장 교대 감독
  • 1984–1986체르노빌 원전 4호기 교대 감독관
  • 1986.04.264호기 안전시험 중 AZ-5 비상정지 지시, 폭발 후 8시간 현장 수습 지휘
  • 2008우크라이나 대통령령으로 3급 용기훈장 사후 수여

레오니트 표도로비치 톱투노프

Леонид Фёдорович Топтунов
과학·기술 소련 국가기관 소련 러시아 1960–1986 ✕ 방사선 피폭

25세에 체르노빌 4호기 AZ-5 버튼을 누른 원자로 운전 선임기사

제어봉 문서를 공부하던 톱투노프는 친구 사샤 코롤에게 '특정 조건에서는 제어봉이 반응을 늦추기는커녕 가속할 수 있다'고 말했고, 석 달 뒤 그 예감은 그가 직접 누른 AZ-5 버튼에서 현실이 되었다.

레오니트 톱투노프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4호기의 원자로 운전 선임기사(SIUR)로, 1986년 4월 26일 참사 당시 야간 교대조 제어반을 맡고 있던 불과 25세의 기술자였다. 독립 근무 석 달째 처음 맞은 정지 작업에서 AZ-5 비상정지 버튼을 눌렀으나 RBMK 제어봉의 설계 결함이 반응도를 급증시켜 폭발을 촉발했고, 사고 직후 통제실로 돌아와 물 공급 밸브를 수동 개방하다 1,300렘의 치명적 방사선을 흡수해 5월 14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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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우크라이나 수미주 니콜라예프카에서 출생
  • 1983오브닌스크 원자력공학연구소 졸업
  • 1983–1986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근무: 블록 제어 기술자, 이후 4호기 원자로 운전 선임기사(SIUR)
  • 1986.04.264호기 안전시험 야간 교대조에서 AZ-5 비상정지 작동, 치명적 방사선 피폭
  • 1986.05.14모스크바 제6병원에서 급성 방사선 증후군으로 사망, 미티노 묘지에 안장

블라디미르 파블로비치 프라비크

Володимир Павлович Правик
과학·기술 소련 국가기관 소련 우크라이나인 1962–1986 ✕ 급성 방사선 증후군

방사능 위험을 통보받지 못한 채 체르노빌 3호기 지붕에 오른 첫 소방대장

'모든 게 괜찮아졌어. 우리 백 살까지 살 거야'... 방사능이 몸을 파괴하는 중에도 모스크바 병상에서 아내에게 보낸 편지

블라디미르 프라비크는 체르노빌 원전 소방대(VПЧ-2) 제3교대를 지휘한 소련 내무부 소방 중위였다. 1986년 4월 26일 4호기 폭발 2분 만에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고, 이윽고 대원 넷과 함께 3호기 지붕에 올라 가동 중인 원자로로의 연소 확대를 저지했다. 방사능 위험을 통보받지 못한 채 시간당 6,000뢴트겐 이상의 방사선장에서 작업했으며, 체르노빌 희생자 중 가장 높은 1,520REM(치사량의 약 3배)에 피폭되어 1986년 5월 11일 모스크바에서 급성 방사선 증후군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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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9–1982체르카시 소방기술학교 졸업
  • 1982소련 내무부 소방 중위 임관
  • 1982–1986체르노빌 원전 제2군사화소방대(VПЧ-2) 제3교대장
  • 1986.4.26체르노빌 참사 첫 대응, 3호기 지붕 화재 진압
  • 1986.5.11급성 방사선 증후군으로 모스크바에서 사망

보리스 미하일로프

Борис Михайлов

보스호트 2호의 우주유영을 가능케 한 팽창식 에어록 볼가의 수석 설계자

1965년 3월 18일,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발사 때 접혀 있던 볼가 에어록이 궤도에서 부풀어 오른 뒤 그 문을 열고 우주로 나갔다.

보리스 미하일로프는 모스크바 근교 토밀리노의 제918공장(훗날 NPO 즈베즈다)에서 수석 설계자로 일하며 1964년 중반, 단 9개월 만에 팽창식 에어록 '볼가'를 설계·제작·시험한 인물이다. 보스호트 우주선에 금속제 에어록을 탑재할 공간이 없었기에, 발사 시에는 접혀 있다가 궤도에서 부풀어 오르는 그의 유연 구조물 설계가 유일한 해법이었다. 1965년 3월 18일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바로 이 에어록을 통해 인류 최초로 우주 공간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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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4–1965제918공장(즈베즈다) 수석 설계자, 팽창식 에어록 '볼가' 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