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노 사카리 아르마스 위리외코스키넨

Aarno Armas Sakari Yrjö-Koskinen
핀란드 국가기관 핀란드 핀란드인 1885–1951 ○ 자연사

전쟁 직전 모스크바의 핀란드 외교관

1939년 11월 26일 저녁, 그는 몰로토프의 마이닐라 포격 항의각서를 받고 즉시 헬싱키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아르노 위리외코스키넨은 독립 핀란드의 법률가이자 외교관으로, 외무부의 정치 업무와 대외 협상을 맡았다. 모스크바 공사로서 그는 1939년 11월 마이닐라 포격을 둘러싼 몰로토프의 항의와 핀란드의 회답을 전달하며 전쟁 직전 외교의 최전선에 섰다. 그는 소련과의 불가침조약 체결에도 참여했지만, 협상으로 안보 갈등을 봉합하려던 외교는 겨울전쟁을 막지 못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모스크바 공사와 마이닐라 포격

위리외코스키넨은 1931년 1월 1일부터 1940년 4월 8일까지 모스크바 주재 핀란드 공사로 재직했다.

1939년 11월 26일, 소련 외무인민위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는 그에게 각서를 보내, 같은 날 오후 3시 45분에 핀란드 방향에서 일곱 발의 포탄이 소련 영내로 날아와 군인 3명과 하사관 1명이 죽고 7명의 병사와 2명의 지휘관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각서는 핀란드군의 집결이 레닌그라드에 대한 위협이자 소련에 대한 적대 행위라며, 핀란드 정부가 카리알랸칸나스의 부대를 국경에서 20~26km 뒤로 즉시 물릴 것을 요구했다.

핀란드 정부는 곧바로 사건 조사에 착수했고, 핀란드 측에서도 포성이 들렸지만 그 발사 지점이 핀란드 영토일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음 날 위리외코스키넨은 핀란드 정부의 답변 각서를 몰로토프에게 전달했다. 답변에 따르면 폭발 지점인 마이닐라 마을의 빈터는 국경에서 약 800m 떨어져 있었고, 들린 일곱 발의 포성으로 미루어 발사한 화포는 폭발 지점에서 약 1.5~2km 남동쪽에 있었다. 답변은 핀란드 영내에는 소련 쪽으로 사격할 수 있을 만큼 국경 가까이에 포병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고 밝히면서, 양측 부대를 일정 거리만큼 후퇴시키는 방안을 협의할 용의가 있음을 전하고 1928년 국경 대표자 협정에 따라 양국 국경 대표자가 공동으로 사건을 조사할 것을 제안했다.

몰로토프는 11월 28일 다시 각서를 보내, 핀란드 정부의 답변이 소련에 대한 깊은 적대심을 드러낸다며 핀란드가 레닌그라드를 위협 아래 두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나흘 뒤인 11월 30일 소련의 핀란드 침공으로 겨울전쟁이 시작되었다. 사료는 이 일련의 포격이 소련 자신이 꾸민 도발이었고 발사 지점은 국경 북쪽에 있었다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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