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가 카라바흐 위기에 투입했으나 검은 1월 속에 도망친 마지막 아제르바이잔 당 서기
25일 밤 베지로프가 전화를 걸어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모스크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야즈 무탈리보프 회고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1988~1990)로,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이 고조되던 시기에 고르바초프에 의해 임명되었다. 카라바흐 출신이었고 10년 이상 외교관으로 해외에 체류해 현지 정치 부패와 무관했으나, 오히려 그 공백 탓에 아제르바이잔 내 권력 집단이나 거리 정치 어느 쪽도 장악하지 못했다. 1990년 1월 바쿠에서 소련군이 민간인을 향해 발포한 검은 1월 사태 직전 상황을 완전히 상실하고 모스크바로 떠났으며, 이후 중앙정부와 헤이다르 알리예프 양쪽으로부터 비난받았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88–1990 정치·당 지도 · 소련
경력 연표
- 1954–1956아제르바이잔 콤소몰 중앙위원회 서기·제2서기
- 1956–1959아제르바이잔 콤소몰 중앙위원회 제1서기
- 1959–1970전연방 콤소몰 중앙위원회 서기
- 1970–1976키로바바트 시당위 제1서기, 이후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 공업부장
- 1976–1979주캘커타 소련 총영사
- 1979–1985주네팔 소련 대사
- 1985–1988주파키스탄 소련 대사, 아프간 철수 협상 참여
- 1988–1990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관련 역사 사건
남아시아 주재 외교관, 1976~1988
1975년 12월 9일 바쿠에서 열린 아제르바이잔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회의가 끝난 뒤, 베지로프는 제1서기 헤이다르 알리예프의 직접 전화를 받았다. 알리예프는 그를 불러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결정문을 읽게 했고, 그는 캘커타 총영사 임명을 통보받았다. 알리예프는 "인재가 부족하다"며 떠나보내기를 거부했고 서기인 코즐로프에게 모스크바에 항의 전화를 걸도록 지시했지만, 중앙은 인사권을 자기에게 있다며 물리쳤다.
베지로프는 이 해를 전후해 12년 동안 아제르바이잔 밖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캘커타 총영사, 1979년부터 1985년까지 네팔 대사, 1985년 5월부터 1988년 7월까지 파키스탄 대사를 지냈다. 베지로프는 훗날 자신이 소련 역사상 유일한 아제르바이잔인 대사였다고 적었다.
그중에서도 아프가니스탄 문제가 그의 임무를 규정했다. 1985년 파키스탄 대사로 부임한 시점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고, 소련 대사관은 아프가니스탄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추진하는 거점이었다. 베지로프는 당시 외교수장 그로미코로부터 "평화로운 네팔에서 적대적인 파키스탄으로" 옮겨간다는 말을 들었다. 근무 기간에 그는 파키스탄 대통령과 외무장관, 총리를 만났고 나지불라 등 아프가니스탄 인사들과 회담했으며 소련-파키스탄 회담에 참여했다.
이 외교 경력이 1988년 그를 다시 바쿠로 불러들였다. 그는 해외에서 12년을 보낸 뒤 아제르바이잔에 돌아와 제1서기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