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스에서 프로이센 국왕의 보장을 요구하게 한 제2제정 마지막 외무장관
1819년 파리의 명문 귀족 그라몽 가문에서 태어나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나왔다. 조부는 혁명기 망명 귀족이었으나 그는 젊은 시절 루이 나폴레옹과 맺은 친분으로 출세해, 1851년 쿠데타 뒤 카셀·슈투트가르트·토리노 공사와 워싱턴·로마·빈 대사를 지냈다. 1870년 5월 올리비에 내각의 외무장관이 되어 호엔촐레른 후보 문제를 다루었고, 7월 12일 밤 올리비에에게 알리지 않고 엠스의 베네데티에게 프로이센 국왕의 보장을 받아 내라는 전보를 보냈다. 비스마르크가 편집한 엠스 전보를 의회에서 「뺨을 맞은 것」이라 불렀고, 프랑스는 19일 선전포고했다. 개전 초 패전으로 8월 9일 내각과 함께 물러났다.
다른 이름: 앙투안 알프레드 아제노르 드 그라몽 · 그라몽 공작
주요 활동과 소속
- 1852–1870 외교·국제활동 · 프랑스 국가기관
- 1870 정부·행정 · 프랑스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852–1853카셀·슈투트가르트·토리노 공사
- 1854–1861워싱턴·로마·빈 대사
- 1870외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