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린 학파의 「붉은 교수」,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초대 편집인
랴잔의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1919년 입당했다. 붉은 교수 학원에서 공부하며 부하린의 개인 비서를 지냈고, 이른바 「부하린 학파」의 대표적인 젊은 이론가로 꼽혔다. 1925년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의 초대 책임 편집인이 되었고,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와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에서 일하며 《볼셰비크》 편집진에 들었다. 우익 반대파 숙청이 시작되자 1928년 사마라로 밀려났고, 거듭 제명과 복당을 겪었다. 1932년 9월 류틴 그룹의 문서를 퍼뜨린 혐의로 체포되어 이듬해 「우파 반혁명 그룹」 지도 혐의로 5년형을 받았다. 1937년 5월 26일 군사참사회의 사형 선고 당일 모스크바에서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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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32
이념·선전
-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책임 편집인1925
경력 연표
- 1919.01.29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입당
- 1924–1925부하린의 개인 비서
- 1925.05–11.19《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초대 책임 편집인
- 1928.05사마라의 중볼가 지방위원회로 전출
- 1932.09.26류틴 그룹 사건으로 체포
- 1933.04.16우파 그룹 지도 혐의로 5년형
- 1937.05.26사형 선고 당일 총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