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과학으로, 인간을 기계의 리듬으로: 50만 노동자를 훈련시킨 사회공학의 창시자
“사회 분야에서도 정밀한 측정, 공식, 도면, 통제 게이지, 사회적 노르말의 시대가 도래해야 한다. 우리는 정신생리학과 경제학의 완전한 수학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 「우리의 과제」 (1921)
수즈달 출생. 1900년 RSDLP 입당, 1905년 코스트로마 소비에트 의장을 지낸 볼셰비키 혁명가. 프랑스 공장 노동 경험을 바탕으로 1920년 중앙노동연구소(CIT)를 창설, '사회공학'을 정립했다. CIT는 50만 명 이상 숙련 노동자를 배출했다. 1932~1936년 전연방표준화위원회 의장. 프롤레트쿨트 시인으로 『노동타격의 시』(1918)를 발표했다. 1938년 체포, 1939년 총살.
경력 연표
- 1901RSDLP 입당
- 1905코스트로마 소비에트 의장
- 1906RSDLP 제4차 대회 대의원
- 1917–1918전러시아금속노동자동맹 중앙위 서기
- 1920–1938중앙노동연구소(CIT) 창설·소장
- 1931VKP(b) 재입당
- 1932–1936전연방표준화위원회 의장
관련 역사 사건
프롤레트쿨트 시인: 기계 시대의 음유시인
가스테프는 소비에트 노동과학의 아버지이기 전에, 프롤레트쿨트 최초의 시인이었다. 1918년 프롤레트쿨트가 처음 출판한 책은 바로 그의 시집 『노동타격의 시』였다. 1926년까지 여섯 번 재판될 만큼 당대 노동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이 작품은 전통적인 시의 운율과 각운을 벗어던지고, 공장의 굉음과 강철의 리듬을 언어로 번역한 산문시였다.
그의 시는 개인의 서정이 아니라 집단적 노동의 신체성을 노래했다. 벨기에 상징주의자 베르하렌과 휘트먼의 민주주의적 송가에서 영향받은 가스테프의 시적 언어는 "기계의 시학"이라 불릴 만했다. "탑들아, 어깨를 펴라 / 철근을 들어올려라 / 기중기, 천장을 찔러라". 그의 시에서 공장은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노동자는 그 거대한 신체의 일부가 된다. 이는 CIT에서 그가 훈련시킨 '인간-기계'의 이상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1916년 시베리아 유배 중 쓴 환상소설 『특급열차: 시베리아 환상』은 북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베링 해협까지 달리는 미래 여행기로, 압축종이로 지은 야쿠츠크, 거대 수족관 도시 오호츠크, 화산열을 이용하는 캄차카, 그리고 천 개의 굴뚝에서 유독가스 대신 청정가스만 내뿜는 '강철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를 그렸다. 이 유토피아는 1920년대 소비에트 산업화의 상상적 청사진이었다.
마야콥스키는 "가스테프와 케르젠체프는 어디 있느냐"라고 노래했고, 니콜라이 아세예프는 그에게 헌정시를 바치며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가스테프"라고 썼다. 1920년 이후 가스테프는 문학을 버리고 전적으로 노동과학에 헌신했지만, 그의 CIT 연구소는 스스로 "나의 마지막 예술작품"이라 부른 대상이었다. 문학과 사회공학은 그에게서 분리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