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의 신뢰를 얻은 소련 정보장교 출신 초대 주쿠바 대사
1962년 5월 크렘린에서 흐루쇼프가 물었다. '카스트로가 핵미사일 배치를 받아들일까?' 알렉세예프는 회고했다. '당혹감을 애써 누르며 나는 피델이 그 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의심을 말했다.'
본명은 알렉산드르 시토프. 모스크바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하고 1939년 NKVD에 들어가 이란·프랑스·아르헨티나에서 정보장교로 활동했다. 1959년 TASS 특파원 신분으로 쿠바에 도착해 피델 카스트로 및 체 게바라와 개인적 신뢰를 쌓았고, 1962년 5월 소련의 초대 주쿠바 대사로 임명되었다. 임명 직후 흐루쇼프에게 카스트로가 핵미사일 배치를 거부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흐루쇼프는 이를 무시했으며, 쿠바 미사일 위기 동안 카스트로의 핵 선제타격 주장을 진정시키고 모스크바와 아바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38–1939스페인 내전 소련 군사고문단 통역
- 1941–1943이란 주재 NKVD 정보장교
- 1944–1951파리 주재 NKVD/KI 레지던트 (공식 직함: 대사관 아타셰)
- 1954–1958아르헨티나 주재 KGB 레지던트 겸 대사관 1등서기관
- 1959–1960쿠바 주재 TASS 특파원 겸 KGB 레지던트
- 1960–1962주쿠바 소련 대사관 문화고문
- 1962–1968주쿠바 소련 대사
- 1974–1980주마다가스카르 소련 대사
관련 역사 사건
쿠바 혁명과 미사일 위기에서의 외교
알렉세예프는 1959년 쿠바에 도착했을 때 소련 정부의 공식 대표가 아니라 타스 통신 특파원 신분이었다. 그는 임무가 쿠바 혁명의 성격과 새 지도부의 목표를 파악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체 게바라를 먼저 만난 뒤 1959년 10월 16일 피델 카스트로를 소개받았고, 이후 쿠바 지도부와 관계를 유지했다. 1960년 소련 대사관이 설치된 뒤 문화고문으로 쿠바에 남아 지도부와의 접촉을 이어갔다.
1962년 5월 흐루쇼프는 핵탄두를 장착한 중거리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는 방안을 알렉세예프에게 제시했다. 알렉세예프는 카스트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며, 쿠바의 방위 전략은 라틴아메리카 여론과 인민의 무장에 기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라시도프, 비류조프와 함께 쿠바로 가 제안을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알렉세예프의 회고에 따르면 카스트로는 소련이 사회주의 진영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소련 대표단은 그가 미사일 배치를 수용한 이유를 다르게 이해했다.
위기 국면에 알렉세예프는 쿠바 현지 상황을 모스크바에 보고했다. 1962년 10월 23일 외무부에 보낸 전문은 라울 카스트로가 35만 명 동원을 발표했고, 그중 10만 5천 명이 전투태세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전문은 동원이 생산 감소와 하루 최대 100만 페소의 비용을 초래할 것으로 추산하면서, 쿠바군이 적의 선제 공격이 있을 때만 적 항공기와 선박에 발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위기 해결 과정은 쿠바와 소련 사이의 긴장도 드러냈다. 알렉세예프는 자신이 케네디와 흐루쇼프의 서신을 카스트로에게 보여주며 간접적으로 협상 정보를 전달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0월 22일 아침, 도르티코스 대통령의 전화로 모스크바 방송에서 미사일 철거 결정을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카스트로와 자신 모두 사전 협의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사일 철거를 둘러싼 이견은 이후에도 남았지만, 알렉세예프의 설명에 따르면 카스트로는 1963년 봄 모스크바를 방문해 흐루쇼프와 이 문제를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