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군대 최연소 원수: 스탈린의 직속 전략폭격 사령관
스탈린이 내외투를 벗겨주자 원수는 당황했고, 스탈린은 말했다. "당신은 내 손님이오."
알렉산드르 골로바노프는 소련의 군사 지휘관으로, 붉은 군대 역사상 최연소 원수이자 항공 총원수였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스탈린 직속의 장거리항공대(ADD)를 지휘하며 베를린·쾨니히스베르크·플로이에슈티에 대한 전략폭격을 주도했고, 항공대를 350대에서 2,000기 이상으로 확장해 스타프카의 독자적 타격군으로 키웠다. 전쟁 전에는 OGPU 요원으로 보리스 사빈코프 체포에 가담했으며, 이후 민간항공 조종사로서 백만 킬로미터 무사고 비행으로 이름을 날렸다. 전후 1948년 실각하여 불가사의한 강등을 겪었으나, 죽는 날까지 스탈린주의자로 남았다.
경력 연표
- 1919–1920붉은 군대 정찰병, 제59소총연대 (동부·남부전선)
- 1924–1931OGPU 특별부서 요원, 보리스 사빈코프 체포 가담; 알마아타 근무
- 1932–1941아에로플로트 조종사·기장·특수비행대 지휘관, 백만 km 무사고 비행
- 1939할힌골 전투 참전, 고위 지휘부 수송
- 1939–1940소련-핀란드 전쟁, 약 400시간 전투비행
- 1941.02제212장거리폭격연대장 (중령)
- 1941.08제81장거리항공사단장, 베를린·쾨니히스베르크 폭격 지휘
- 1942.02–1944.12장거리항공대(ADD) 사령관, 스타프카 직속; 350→2,000기 이상으로 확장
- 1943.08항공원수 진급 — 붉은 군대 최연소 원수
- 1944.08항공 총원수 진급
- 1944.12–1946.04제18항공군 사령관 (ADD 재편)
- 1946.04–1948소련 장거리항공대 사령관
- 1948–1950보로실로프 고등군사아카데미 수학 (금메달 졸업)
- 1952–1953제37근위공수군단장 — 총원수의 군단장 강등
- 1953예비역 편입
- 1958–1966민간항공연구소 비행부문 부소장
관련 역사 사건
스탈린과의 관계: 총애와 실각
골로바노프와 스탈린의 관계는 소련 군사사에서 가장 이례적인 사령관-최고사령관 관계였다. 1941년 1월, 당시 아에로플로트 수석 조종사였던 골로바노프는 악천후·야간 장거리 비행을 위한 특수 훈련의 필요성을 스탈린에게 직서했다. 스탈린은 그를 크렘린으로 불러 면담했고, 이 자리에서 "이런 인재가 왜 민간항공에 있느냐"며 즉시 중령 계급을 부여하고 제212장거리폭격연대장으로 임명했다. 이것이 전쟁 내내 지속된 직접적·개인적 신임 관계의 시작이었다.
1942년 2월 장거리항공대(ADD)가 창설되자 스탈린은 ADD를 공군 주력에서 분리해 스타프카 직속으로 두고 골로바노프에게 맡겼다. 이는 소련 항공 지휘 구조에서 전례 없는 조치였다. 스탈린은 다른 고위 장성들에게조차 성(姓)으로만 호칭했으나, 골로바노프는 이름인 '알렉산드르 예브게니예비치'로 불렀다. 독일 정보부는 그를 "스탈린에게 자유로운 접근 권한을 가진 소수"로 분류했다. 스탈린은 골로바노프의 딸 베로니카 탄생을 직접 축하하고 스타프카 소집을 미루었으며, 내외투를 벗겨주며 "당신은 내 손님이오"라고 말하는 등, 다른 지휘관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사적 친밀감을 드러냈다.
이 총애는 유례없는 속도로 제도화되었다. 1941년 2월 중령이었던 골로바노프는 1943년 8월 항공원수가 되었고, 1944년 8월에는 항공 총원수로 진급했다. 3년 반 만에 중령에서 총원수까지 오른 것은 소련군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게오르기 주코프조차 이러한 급진급을 질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1948년 5월 골로바노프는 사령관직에서 해임되고 보로실로프 고등군사아카데미로 보내졌다. 해임 이유는 오늘날까지 불분명하다. 아카데미를 금메달로 졸업했음에도 실질적 보직을 받지 못했고, 1952년에는 충격적인 강등 조치로 제37근위공수군단장에 임명되었다. 총원수가 군단장을 맡은 사례는 소련군 역사상 전무후무했다. 당국은 그에게 스스로 항공 총원수 계급을 일반 대장으로 강등해 달라고 청원할 것을 종용했으나 골로바노프는 거부했다. 1953년 스탈린 사후 '건강상의 이유'로 예비역 편입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골로바노프는 이 모든 굴욕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까지 확고한 스탈린주의자로 남았다. 그의 회고록 『장거리 폭격…』은 스탈린을 "자본주의 국가의 어떤 군사·정치 지도자와도 견줄 수 없는 군사적 천재"로 묘사하며 웅변적인 변론을 펼친다. 그의 딸 올가는 "아버지는 스탈린의 죽음을 무겁게 받아들였고, 죽는 날까지 스탈린주의자로 남았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