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노해방과 대개혁으로 구체제를 위로부터 현대화하려 했던 차르, 혁명가들의 표적이 되다
1856년 모스크바 귀족들에게 한 연설: "현행 농노 소유 질서는 그대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아래로부터 저절로 폐지되기를 기다리느니, 위로부터 폐지하는 편이 낫습니다."
1855년 크림전쟁의 패배 속에 즉위한 알렉산드르 2세는 '아래로부터 폐지되기를 기다리느니 위로부터 폐지하는 편이 낫다'며 1861년 농노제를 폐지하고, 젬스트보 자치·사법 개혁·병역 개혁을 차례로 단행했다. '해방자 차르'로 불렸으나, 개혁은 급진파에게는 불충분했고 보수파에게는 지나쳤으며, 1866년 암살 미수 이후 반동으로 기울었다. 1881년 3월 13일, 로리스멜리코프 헌법 초안에 서명한 바로 그날, 인민의 의지 당원이 던진 폭탄에 치명상을 입고 겨울궁전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은 대개혁 시대의 종말이자 알렉산드르 3세의 반동으로 이어졌으며, 혁명적 테러를 러시아 정치의 결정적 방법으로 확립시켰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855–1881 군주·왕실 · 러시아 제국
경력 연표
- 1825아버지 니콜라이 1세 즉위로 황태자(체사레비치)가 되다
- 1855차르 즉위; 크림전쟁 패배 속에 즉위
- 1856파리 조약으로 크림전쟁 종결; 대관식에서 정치범 사면
- 1861농노해방령 — 2,300만 농노 해방
- 1863–64폴란드 봉기 진압; 핀란드 의회 재소집
- 1864젬스트보(지방자치) 개혁, 사법 개혁
- 1874전계급 징병제 도입 — 군제 개혁
- 1877–78러시아-튀르크 전쟁; 불가리아 해방
- 1880로리스멜리코프에게 헌법 초안 위임
- 1881.3.13인민의 의지(나로드나야 볼랴) 소속 이그나치 그리네비츠키의 폭탄에 치명상, 겨울궁전에서 사망
1861년 농노해방과 토지 상환
1861년 3월 3일(구력 2월 19일) 알렉산드르 2세는 농노해방령에 서명했다. 이 선언에는 제국의 농노를 해방한 17개 법령이 수반됐다. 농노들은 신분상 자유를 얻었고 토지를 약속받았지만, 토지는 자동으로 무상 분배되지 않았다. 토지 소유권은 지주에게 남아 있었으며, 토지 목록과 할당량 및 가격을 산정하는 동안 농민은 지주를 위해 계속 노동해야 했다. 농민은 정부 대부를 이용해 할당지를 지주에게서 상환하고, 그 대부를 정부에 49년간 갚도록 되어 있었다.
이 안은 자유주의자·보수 지주·관료·귀족의 계획을 절충한 것이었으며 농민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1881년까지 농민의 약 85퍼센트가 토지를 받았고, 상환은 의무가 됐다. 농노 신분에서 벗어난 뒤에도 많은 농민은 토지 부족과 상환 부담에 시달렸다. 정부가 상환금 제도를 끝낸 것은 1905년이었다. 따라서 해방은 법적 신분을 바꾸었지만, 농민의 토지 취득을 지연시키고 장기 채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