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의 대개혁을 되돌리고 전제정치를 재확립한 '평화를 만드는 자'
오스트리아 대사가 전쟁을 위협하자 알렉산드르 3세는 은제 포크를 매듭으로 구부려 대사의 접시 위에 던지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대의 두세 개 군단에게 할 일이다.'
1881년 부친 알렉산드르 2세 암살 직후 즉위한 알렉산드르 3세는 개혁이 혁명을 낳는다는 신념 아래 포베도노스체프의 '전제정치 불가침 선언'으로 개혁안을 폐기하고, 젬스트보 약화·검열 강화·토지대장을 통한 농촌 통제 등 체계적 반개혁을 단행하며 '정교·전제·국민성'을 국시로 러시아화와 유대인 박해를 전개했다. 대외적으로는 큰 전쟁을 피해 '미로트보레츠(평화를 만드는 자)'로 불렸으나, 그의 프랑스-러시아 동맹은 훗날 러시아를 세계대전으로 끌어들이는 지정학적 틀이 되었다. 그가 재건해 아들 니콜라이 2세에게 물려준 전제 권력은 1905년과 1917년 혁명이 산산조각낼 구체제 그 자체였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881–1894 군주·왕실 · 러시아 제국
경력 연표
- 1865형 니콜라이 황태자의 죽음으로 황태자(체사레비치)가 되다
- 1866포베도노스체프에게 법률 교육을 받기 시작하다
- 1877–78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루슈크 분견대 지휘
- 1881.3.13부친 암살 후 즉위
- 1881.4.29'전제정치 불가침 선언' 공포, 반개혁 시작
- 1889토지대장(zemsky nachalnik) 제도 도입으로 농촌 귀족 통제 강화
- 1892프랑스-러시아 동맹 체결
농촌 통치와 산업·재정 정책
1881년 알렉산드르 3세 정부는 농민 부담을 줄이고 지방 자치를 재편하려는 초기 구상을 검토했지만, 보수파가 우세해지면서 농촌 통제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1889년 토지관 제도는 지방 지주를 관리로 임명해 농민 공동체와 선출직 관리에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게 했고, 1890년 젬스트보법은 지방 의회에서 지주 대표의 비중을 높였다. 동시에 재무장관 이반 비슈네그라드스키는 철도 확장과 산업 보호를 추진했다. 철도망은 재위 초 약 2만4천 킬로미터에서 말 약 3만9천 킬로미터로 늘었고, 1891년 보호관세는 수입품 관세율을 종전 13퍼센트에서 약 34퍼센트로 끌어올렸다. 외국 자본 유입과 산업 투자가 늘었지만 소비자 물가와 농촌의 부담도 커졌다. 곡물 가격은 1881년부터 1894년 사이 절반으로 떨어졌으며 농민의 세금 체납은 1871~80년 평균보다 다섯 배 넘게 늘었다. 1891~92년 기근에 정부는 구호를 위해 젬스트보를 동원했다. 전제 권력 강화와 산업 근대화가 병행되는 동안 농업 위기는 누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