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필리포비치 카투세프

Александр Филиппович Катусе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39–2000 ✕ 자살

숨가이트 포그롬의 불씨를 당긴 소련 부검찰총장

1988년 2월 27일 중앙텔레비전에서 그는 아스케란 충돌로 숨진 두 청년이 '아제르바이잔인'이라 밝혔고, 그날 밤 숨가이트 포그롬이 터졌다.

벨로루시 출신의 소련 군사법률가로, 1987년 소련 부검찰총장에 임명되어 우즈베키스탄 등 주요 부패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역사에 남은 것은 1988년 2월 27일 중앙텔레비전 방송에서 아스케란 인근 충돌로 사망한 두 아제르바이잔인 청년의 이름과 국적을 거론한 순간이다: 이 발표는 몇 시간 뒤 숨가이트 포그롬의 직접적 방아쇠가 되었다. 1989년부터 주임군사검사로 재임하며 판필로프 28영웅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했으나, 8월 쿠데타 이후 강제 퇴진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숨가이트 학살과 카투세프의 텔레비전 발표

1988년 2월 27일 소련 부검찰총장 알렉산드르 카투세프는 바쿠 라디오와 중앙텔레비전에서 며칠 전 아그담 인근 충돌로 아제르바이잔인 청년 바흐티야르 굴리예프와 알리 하지예프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토머스 드 발은 『검은 정원』에서 그가 아스케란에서 살해된 두 청년의 이름을 공개했고, 그중 한 명은 아제르바이잔 경찰관에게 살해됐지만 발표에서 이를 밝히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드 발은 이 발표를 숨가이트의 긴장을 더욱 자극한 요인으로 본다. 그러나 방송 하나가 포그롬을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아르메니아 구호가 이미 거리에서 울렸고, 같은 날 저녁 군중이 아르메니아인 주민을 찾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제르바이잔인 폭도들의 공격은 3월 1일까지 이어졌으며, 소련 검찰총장 발표의 공식 사망자는 아르메니아인 32명이었다. 1988년 2월 위기의 구체적 경과는 카투세프의 발표와 도시 당국의 대응을 함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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