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간 노동제를 도입한 자본가, 차르 체제를 뒤흔든 진보블록의 설계자
1917년 5월 16일, 군산업위원회 대회 연설에서 그는 경고했다: "반국가적 경향이, 대중을 최면에 빠뜨리는 구호로 자신의 본질을 위장하며, 러시아를 거대한 걸음으로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러시아 최대 섬유 자본가 중 한 명으로, 1900년에 이미 9시간 노동제와 노동자 주택·학교·병원을 도입한 선구적 산업가였다. 진보당 창립자이자 4대 두마 부의장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진보블록을 조직하여 차르 체제에 맞선 의회 반대파의 중심에 섰다. 1917년 2월 혁명 후 임시정부의 통상산업부 장관을 두 차례 지냈고, 마지막 내각에서는 케렌스키의 부총리로서 10월 혁명 당일 겨울궁전에서 체포된 각료 회의를 주재했다. 이후 프랑스로 망명하여 밀류코프의 『최신소식』 발행을 이끌며 러시아 망명 사회의 좌파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했다.
경력 연표
- 1897–1905가업인 콘스탄틴 직물 공장 경영, 1900년 9시간 노동제·노동자 주택·학교·병원 도입
- 1905–12통상산업당 공동 창립, 모스크바 증권거래소 부위원장
- 1912–14진보당 공동 창립, 4대 두마 의원(코스트로마), 두마 부의장
- 1915–17.2중앙군산업위원회 부의장, 진보블록 조직, 두마 임시위원회 위원
- 1917.3–5임시정부 통상산업부 장관(1차), 노사 타협 추진하다 사임
- 1917.9–10부총리 겸 통상산업부 장관, 10월 25일 겨울궁전에서 각료 회의 주재 중 체포
- 1918–40프랑스 망명, 『최신소식』 이사회 의장, 진보적 망명 단체 지도
- 1941–49미국 거주 후 파리 귀환, 194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