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플란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며 전후 복구와 코시긴 개혁 준비에 참여한 계획경제 관료
1944년 봄, 해방된 소련 영토의 공장·철도·주택을 목록화하고 복구 우선순위를 매기는 고스플란 특별부서가 신설되자, 코로보프가 그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소련 계획경제의 중추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경제관료로, 고스플란 내부에서 실무자에서 부의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방지역 경제복구를 담당하는 고스플란 부서를 이끌었고, 전후에는 국가계획위원회 부의장으로서 흐루쇼프 시기 경제개혁 논의에 참여했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국가계획위원회 부의장 겸 소련 각료로 재임하며 코시긴의 1965년 경제개혁 준비 작업에 관여했다.
경력 연표
- 1938–1951고스플란에서 그룹장, 부서차장, 부서장, 국장 역임
- 1951–1953고스플란 부의장, 소련 각료회의 의장 보좌관
- 1953–1958소련 각료회의 사무국장
- 1958–1960소련 재무부 차관
- 1960–1963국가경제위원회 부의장, 고스플란 종합계획부장
- 1963–1965국가계획위원회 부의장 겸 소련 각료
관련 역사 사건
1955년 고스플란 개혁과 계획경제 보수파
1955년 초, 소련 계획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5차 5개년 계획의 통제 과제가 승인되지 못한 채 표류했고, 연료·금속 부족과 부처 간 투자 경쟁이 계획 체계를 잠식했다. 1955년 2월, 말렌코프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닷새 만에 고스플란 의장 사부로프가 당 중앙위원회 상임간부회에 고스플란 개편안을 제출했다. 개혁의 핵심은 고스플란을 장기 계획(고스플란)과 연간 운영 계획(고스에코놈코미시야)으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이때 각료회의 사무국장이었던 코로보프는 불가닌 총리를 위해 「고스플란 업무 재편 및 국가계획 개선에 관한 결정 초안에 대한 의견」을 작성했다. 이 문서는 개혁안의 초안부터 최종본까지 세 차례에 걸친 검토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코로보프는 고스플란을 두 기관으로 분할하는 방안을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는 장기 계획과 현행 계획의 분리가 오히려 계획 기관 간 불필요한 문서 왕래, 중복 업무, 무책임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로보프의 대안은 고스플란을 단일 기관으로 유지한 채 내부 구조와 업무 방식을 개편하는 것이었다.
코로보프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955년 5월 고스플란은 두 기관으로 분할되었다. 그러나 이 구도는 1957년 흐루쇼프의 국민경제회의 개혁으로 폐기될 때까지 2년도 채 유지되지 못했다. 코로보프 자신은 이후 고스플란으로 복귀했고, 1965년 코시긴 개혁 준비 국면에서도 '지휘경제 체계의 베테랑'으로 분류될 만큼 보수적 입장을 견지했다. 역사학자 뱌체슬라프 네크라소프에 따르면, 1955년 고스플란 개혁의 실제 설계 과정을 보여주는 가장 귀중한 1차 자료가 바로 코로보프의 「의견」 문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