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시타트 포병대장으로 봉기했고, 볼셰비키가 '반란의 주모자'로 지목한 구제국 장군
"공산주의자들은 크론시타트 봉기를 백위대 음모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 내 이름을 이용했다. 내가 요새에 있던 유일한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제정 러시아 포병 장교로 30년간 복무하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시베리아 포병 여단을 지휘했다. 2월 혁명 후 예편했다가 1918년 붉은 군대에 군사전문가로 입대했고, 1920년 12월 크론시타트 요새 포병대장에 임명되었다. 1921년 3월 크론시타트 봉기 당시 봉기군의 방어를 조직했으나, 볼셰비키는 3월 2일 포고에서 봉기를 '코즐롭스키 전 장군의 반란'으로 규정하고 그를 법외자로 선언했으며, 가족과 지인 27명을 인질로 체포했다. 봉기 진압 후 8천여 명의 크론시타트 수병과 함께 핀란드로 탈출했고, 망명지에서 교사와 정비공으로 일하다 1940년 헬싱키에서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882블라디미르 키예프 사관생도단 입대
- 1884미하일롭스키 포병학교 졸업
- 1890미하일롭스키 포병아카데미 1등급 졸업
- 1905–1912제33포병여단 제2대대장
- 1912소장 진급; 제11시베리아 포병여단장
- 1914–1917제1차 세계대전 참전; 제34군단 포병감
- 1918–1920적군 군사전문가로 복무
- 1920.12–1921.03크론시타트 요새 포병대장; 봉기 중 방어 지휘
- 1921–1940핀란드 망명: 교사, 도로 노동자, 정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