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사모일로비치 마르티노프

Александр Самойлович Мартынов

《노동자의 대의》 편집자로 「경제주의」를 이끈 멘셰비키 이론가, 뒤에 코민테른 일꾼

러시아의 혁명가. 핀스크의 유대계 목재상 집안에서 태어나 1884년 「인민의 의지」에 들어갔고, 체포와 시베리아 유형을 거쳐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900년 망명해 《노동자의 대의》 편집진에 들어가 「경제주의」를 이끌었고,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그를 집중 비판했다. 1903년 2차 당대회 뒤 멘셰비키의 주요 이론가가 되었다. 1918년 멘셰비키와 갈라섰고 1923년 공산당에 입당해 코민테른에서 일했다.

다른 이름: 사울 피케르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경제주의」와 『무엇을 할 것인가』

마르티노프는 학창 시절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감동해 주인공 라흐메토프를 흉내 내어 손에 담배를 비벼 끄곤 했다고 회고했다. 1884년 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들어가 「인민의 의지」에 가담했고, 1886년 시위 참가로 다시 체포된 뒤 오데사의 독방에서 2년을 보내고 동시베리아로 10년 유형을 갔다. 유형에서 돌아온 1899년 그는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었다.

1900년 망명한 그는 재외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동맹의 기관지 《노동자의 대의》 편집진에 들어갔다. 그는 당이 러시아 노동자들의 자발적 주도를 따라야 하며, 임금과 노동조건처럼 구체적 개선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문제에서 정부와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투쟁이야말로 대중을 적극적 정치 투쟁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널리 쓸 수 있는 수단」이라는 그의 주장은 《이스크라》 편집진이 노동자의 직접 경험과 동떨어진 장기적 정치 문제에만 매달린다는 비판이었다.

레닌은 1902년 『무엇을 할 것인가』의 여러 장을 「경제주의자」 공격에 바쳤다. 레닌은 마르티노프가 노동자의 계급적 정치의식을 「안에서부터」 키울 수 있다고 본 것이 잘못이며, 그것은 「밖에서부터만」 들어올 수 있다고 썼다. 1903년 7월 2차 당대회에서 마르티노프는 레닌의 직업 혁명가 조직론이 운동의 지도 분자와 노동자 대중 사이에 깊은 틈을 연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회가 재외 동맹을 당의 구성 조직으로 인정하지 않자 그는 아키모프와 함께 퇴장했고, 그래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갈라지는 표결 때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 뒤 그는 멘셰비키에 합류해 트로츠키가 「멘셰비키 전술의 반관(半官) 철학자」라 부른 이론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