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강제 징발로 빵 위기를 폭발시킨 마지막 차르 체제 농업장관
1917년 2월 17일 두마 연단에서 곡물 징발의 정당성을 역설했으나 야당의 냉소만 샀다. 닷새 뒤 페트로그라드의 빵 가게 앞에 선 여성들이 혁명을 시작했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농업장관으로, 1916년 11월 29일 곡물 강제 징발령(продразвёрстка)에 서명했고 1917년 1월 말 페트로그라드의 제분소 공급을 하루 3만 5천 푸드로 제한했다. 이는 빵 부족과 줄서기 공황을 촉발해 2월 혁명의 직접적 방아쇠가 되었다. 원래 스톨리핀 농업개혁의 핵심 설계자였던 유능한 관료였으나, 전시 경제의 수송 붕괴와 인플레이션 앞에서 도구를 잘못 쥔 개혁가로 역사에 남았다.
경력 연표
- 1888알렉산드르 관립학교(리체이) 금메달 졸업
- 1888–1905내무성 지방국·경찰국·이주관리국 근무, 농업문제 특별회의 서기
- 1905–1912토지정리·농업총국 국유지부장, 스톨리핀 개혁 입법 설계
- 1912–1916농업차관, 궁정 시종장(1913), 원로원 의원(1916)
- 1916.11–1917.02농업장관 — 곡물 징발령 서명(11.29), 페트로그라드 제분 제한(1917.1)
- 1919–1930영국 망명, 런던 소재 러시아 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