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전자산업을 창설하고 20년간 이끈 군수 전자공학의 설계자
쇼킨은 즐겨 말했다. "포드 사는 '포드' 자동차를 만든다. 그러니 MEP(전자공업부)는 '엘렉트로니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소련 전자산업의 창설자로, 1961년 전자기술 국가위원회 의장으로 발탁된 뒤 1965년부터 1985년까지 전자공업부 장관을 지내며 소련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토대를 닦았다. 그가 구상한 젤레노그라드는 '소련의 실리콘밸리'로 불렸으나,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서방과의 격차는 오히려 벌어졌다.
경력 연표
- 1934–1938조선공업 분야 기술자, 공장장, 설계국장
- 1938–1943국방공업인민위원부 → 조선공업인민위원부 주임기사
- 1943–1949레이더위원회 공업부장 → 각료회의 제3위원회 부의장
- 1949–1955통신장비공업 차관 → 무선기술공업 차관
- 1955–1961무선기술공업 제1차관 → 라디오전자 국가위원회 제1부의장
- 1961–1965소련 각료회의 전자기술 국가위원회 의장
- 1965–1985소련 전자공업부 장관
관련 역사 사건
젤레노그라드에서 '쇼킨그라드'까지: 소련의 실리콘밸리 건설
1958년, 모스크바 인근 크류코보 역 주변에 새로운 도시 '스푸트니크'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당초 섬유산업 중심지로 기획되었으나, 1962년 알렉산드르 쇼킨이 전격적으로 개입하여 이 도시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소련의 전자기술 국가위원회 의장이었던 쇼킨은 서방의 집적회로 발전에 위기감을 느끼고, 소련에도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전담 연구·생산 복합단지가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당시 흐루쇼프의 관리체계하에서는 연구소와 공장을 한 울타리 안에 두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쇼킨은 관료적 장벽을 돌파하기 위해 1962년 초 크렘린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상임위 회의 도중 소형 전시회를 열었고, "담뱃갑만 한 텔레비전"의 시대를 예고하며 흐루쇼프의 흥미를 끌어냈다. 결정적인 순간은 1962년 5월 레닌그라드에서 찾아왔다. 쇼킨은 흐루쇼프의 조선업 관련 방문에 맞춰 탁상용 미니 컴퓨터와 세계 최소형 라디오 수신기 '에라'를 시연했고, 귀에 꽂은 수신기를 떼지 못한 흐루쇼프는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이것이 바로 기계의 두뇌이며 우리의 미래다"라고 선언했다. 같은 해 8월, 마침내 '스푸트니크'를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중심지로 전환하는 중앙위원회·각료회의 공동 결의가 서명되었다. 흐루쇼프는 이를 위해 금 4톤에 달하는 자원을 배정했다고 전해진다.
1963년 1월, 이 도시는 '젤레노그라드'(녹색 도시)라는 이름을 얻었다. 쇼킨은 건설 현장을 직접 챙겼다. 초기에는 매주 장화에 솜옷 차림으로 공사 구역을 누볐고, 건축가 이고리 로진과 함께 호밀밭을 거닐며 현장을 정했다. 그는 획일적인 흐루쇼프 시대 건축 양식을 저지하고 실험적 설계를 도입했으며, 1965년에는 업계 인재 양성을 위해 모스크바 전자기술대학(MIET)을 젤레노그라드 내에 설립했다. 젤레노그라드는 6개의 전문 연구소와 시험 공장, 전산 센터를 갖춘 단일 과학복합체로 성장했고, 소련 방위 전자공학의 중추가 되었다. 쇼킨이 1985년 장관직에서 물러날 무렵, 젤레노그라드 주민들은 그의 공로를 기려 이 도시를 비공식적으로 '쇼킨그라드'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