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ON을 창설하고 옐친에게 패한 마지막 공산당 RSFSR 총리
내무부에서 블라소프를 부르던 별명은 「티샤이시」였다 — 가장 조용한 자. 조직범죄를 방치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그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켰다.
부랴티야의 광산 기술자 출신으로 콤소몰과 당 기구를 거쳐 체첸-인구시 공화국과 로스토프 주의 당 제1서기를 지낸 전형적인 소비에트 당 관료였다. 1986년 1월 내무장관에 임명되어 특수경찰부대 OMON을 창설했으나, 조직범죄 대응에 소극적이란 비판을 받으며 2년 8개월 만에 바카틴으로 교체되었다. 1988년 10월 RSFSR 각료회의 의장(총리)으로 옮겼고, 1990년 5월 최고소비에트 의장 선거에서 보리스 옐친에게 535 대 467로 패배했다.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당 조직의 적응 논리를 체현했으나 결국 양쪽에 밀려난 인물이다.
경력 연표
- 1954–1955체렘호보 탄광 5호 갱부 감독; 콤소몰 체렘호보 시위원회 선전부장, 제2서기
- 1955–1961이르쿠츠크 주 콤소몰 제2서기, 제1서기
- 1961–1965이르쿠츠크 주 지민스키 구당 제1서기; 이르쿠츠크 공업주당 제2서기; 이르쿠츠크 주 집행위 제1부의장
- 1965–1972야쿠트 주당 서기, 제2서기
- 1972–1975CPSU 중앙위 감찰원
- 1975–1984체첸-인구시 공화국 당 제1서기
- 1984–1986로스토프 주당 제1서기
- 1986–1988소련 내무장관 (중장, 재임 중 상장 진급)
- 1988–1990RSFSR 각료회의 의장; 정치국 후보위원 (1988.9–1990.7)
- 1990.5RSFSR 최고소비에트 의장 선거에서 보리스 옐친에 패배 (467:535)
- 1990–1991CPSU 중앙위 사회경제부장
- 1994–2002이르쿠츠크 향우회 「바이칼」 회장
관련 역사 사건
내무장관 시절과 OMON 창설
1986년 1월 24일, 블라소프는 비탈리 페도르추크의 후임으로 소련 내무장관에 임명되었다. 부임 직후 중장 계급을 받았고 1987년 10월 상장(대령급)으로 진급했다. 그의 재임 기간은 페레스트로이카의 개방 정책과 맞물려 소련 사회의 균열이 가시화되던 시기였다. 공화국들에서는 민족 갈등이 표면화되고 조직범죄가 급성장했으며, 거리에서는 허가되지 않은 집회와 시위가 늘어났다.
블라소프의 가장 뚜렷한 제도적 유산은 오몬(OMON, 특수목적경찰대)의 창설이다. 기존 순찰초소근무대(OBPPSM) 산하 특수작전중대를 모체로 하여 대도시에 배치된 이 부대는 대규모 행사 질서 유지, 무허가 집회 해산, 무장 범죄 조직 진압을 임무로 삼았다. 1988년 10월 3일 공식 창설 당시 19개 대대, 총원 약 7천 명 규모였다. 블라소프가 물러난 후 후임 바딤 바카틴이 지역 단위 오몬 확대를 이어갔다.
그러나 블라소프의 내무부 지도력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조직범죄 대응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이유로 당시 내무부 산하 조직범죄연구소 소장이던 알렉산드르 구로프 중장은 그를 공개적으로 맹비난했다. 구로프의 증언에 따르면 내무부 내에서 블라소프의 별명은 '티샤이시(Тишайший)': 가장 조용한 자였다. 범죄가 폭증하는 와중에도 장관은 침묵했고, 고르바초프는 1988년 10월 그를 내무장관에서 경질하고 RSFSR 총리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