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블라디미로비치 블라소프

Александр Владимирович Власов
소련 러시아 1932–2002 ○ 폐암으로 사망

OMON을 창설하고 옐친에게 패한 마지막 공산당 RSFSR 총리

내무부에서 블라소프를 부르던 별명은 「티샤이시」였다 — 가장 조용한 자. 조직범죄를 방치한다는 비판 속에서도 그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켰다.

부랴티야의 광산 기술자 출신으로 콤소몰과 당 기구를 거쳐 체첸-인구시 공화국과 로스토프 주의 당 제1서기를 지낸 전형적인 소비에트 당 관료였다. 1986년 1월 내무장관에 임명되어 특수경찰부대 OMON을 창설했으나, 조직범죄 대응에 소극적이란 비판을 받으며 2년 8개월 만에 바카틴으로 교체되었다. 1988년 10월 RSFSR 각료회의 의장(총리)으로 옮겼고, 1990년 5월 최고소비에트 의장 선거에서 보리스 옐친에게 535 대 467로 패배했다.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당 조직의 적응 논리를 체현했으나 결국 양쪽에 밀려난 인물이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내무장관 시절과 OMON 창설

1986년 1월 24일, 블라소프는 비탈리 페도르추크의 후임으로 소련 내무장관에 임명되었다. 부임 직후 중장 계급을 받았고 1987년 10월 상장(대령급)으로 진급했다. 그의 재임 기간은 페레스트로이카의 개방 정책과 맞물려 소련 사회의 균열이 가시화되던 시기였다. 공화국들에서는 민족 갈등이 표면화되고 조직범죄가 급성장했으며, 거리에서는 허가되지 않은 집회와 시위가 늘어났다.

블라소프의 가장 뚜렷한 제도적 유산은 오몬(OMON, 특수목적경찰대)의 창설이다. 기존 순찰초소근무대(OBPPSM) 산하 특수작전중대를 모체로 하여 대도시에 배치된 이 부대는 대규모 행사 질서 유지, 무허가 집회 해산, 무장 범죄 조직 진압을 임무로 삼았다. 1988년 10월 3일 공식 창설 당시 19개 대대, 총원 약 7천 명 규모였다. 블라소프가 물러난 후 후임 바딤 바카틴이 지역 단위 오몬 확대를 이어갔다.

그러나 블라소프의 내무부 지도력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조직범죄 대응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이유로 당시 내무부 산하 조직범죄연구소 소장이던 알렉산드르 구로프 중장은 그를 공개적으로 맹비난했다. 구로프의 증언에 따르면 내무부 내에서 블라소프의 별명은 '티샤이시(Тишайший)': 가장 조용한 자였다. 범죄가 폭증하는 와중에도 장관은 침묵했고, 고르바초프는 1988년 10월 그를 내무장관에서 경질하고 RSFSR 총리로 옮겼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