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콘스탄티노비치 보론스키

Александр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Воронский
소련 러시아 1884–1937 ✕ 처형

《크라스나야 노비》 편집장, 바벨·파스테르나크를 발굴한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1921년 크렘린의 레닌 자택. 《크라스나야 노비》 창간 회의에서 고리키가 인도 설화집을 보이자 레닌은 "이걸 황금 외화로 사고 있다. 올해는 기근이 든다"고 잘랐다. 보론스키는 이렇게 회고했다: "두 진리가 충돌했다 —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와 '그러나 빵이 없다면'."

《크라스나야 노비》를 창간해 바벨·파스테르나크를 발굴한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예술을 삶의 인식으로 보는 미학으로 RAPP에 맞서 페레발을 이끌었다. 좌익반대파 가담 후 1937년 처형.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인식으로서의 예술 — 보론스키의 미학과 페레발

보론스키 미학의 핵심 명제는 "예술은 무엇보다도 삶의 인식이다"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예술은 공상의 자의적 유희도, 주관적 감정의 단순한 표출도 아니었다. 예술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삶을 인식하지만, 과학이 분석하고 추상화하며 개념으로 작업한다면, 예술은 종합하고 구체화하며 생생한 감각적 이미지로 작업한다. 이는 벨린스키의 전통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그가 1923년 결성한 문학그룹 '페레발(Перевал, 고개)'은 이 미학의 실천적 터전이었다. 페레발은 예술을 계급투쟁의 직접적 도구로 환원하려는 RAPP(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작가 협회)의 도식주의에 정면으로 맞섰다. 보론스키는 프롤레타리아 작가의 '헤게모니'를 원칙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기계적 계급론이나 '공산주의적 오만(комчванство)'으로 변질되어 예술적 진실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RAPP는 이에 대해 '보론쉬나(Воронщина)'라는 조롱 섞인 신조어로 응수했다.

보론스키의 후기 저작 『세계를 보는 기술』(Искусство видеть мир, 1928)에서 그의 미학은 더욱 정교화된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란 익숙한 사물에서 낯설고 새로운 측면을 발견해내는 '낯설게 하기'의 능력을 지닌 자라고 보았다. 예술은 현실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능동적 인식 행위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프롤레트쿨트의 '생산으로서의 예술', 레프(ЛЕФ)의 '사실의 문학', RAPP의 '계급적 예술'이라는 세 가지 경향 모두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었다.

그는 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창조 과정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변증법을 탐구했다. 예술가는 무의식적 충동과 직관을 통해 세계의 새로운 측면을 포착하지만, 최종적 형상화 단계에서는 지성과 기예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는 기계적 유물론도, 신비주의적 직관론도 아닌 독자적인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모색이었다.

1925년 볼셰비키 당 중앙위원회의 '문예정책에 관한 결의'는 보론스키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결의는 동반자 작가에 대한 '재치 있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지시하고 '자유로운 창조적 경쟁'을 인정했으며, 계급적 오만을 경계했다. 그러나 스탈린파가 당을 장악하고 문화혁명이 급진화되면서 RAPP의 노선이 사실상 승리했고, 보론스키의 미학은 트로츠키주의와 결부되어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은 1960년대 해빙기 이후 재발견되어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가장 독창적이고 생산적인 유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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