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코리지스

Αλέξανδρος Κορυζής
그리스 국가기관 그리스 그리스인 1885–1941 ✕ 자살

침공 속에서 영국 원조를 받아들인 그리스 총리

1941년 4월 6일 독일의 침공이 시작되자 그는 영국군 철수를 요구한 독일의 통첩을 거부했다.

알렉산드로스 코리지스는 법률가·경제학자이자 은행가로, 국가 재정과 농업 신용 제도의 조직에 관여했다. 그는 이오아니스 메탁사스의 권위주의 정권에서 관료와 장관을 지냈지만, 정당 정치인이라기보다 행정가로 총리가 되었다. 1941년 1월 메탁사스 사망 뒤 영국군 지원을 받아들이며 독일의 침공에 맞선 정부를 이끌었고, 그 선택은 그리스의 전쟁 수행을 연합국과 결부시켰다. 독일군이 진격하던 4월 18일 자살로 생을 마쳤다.

다른 이름: 알렉산드로스 코리시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총리직과 1941년 4월의 죽음

1941년 1월 메탁사스가 후두암으로 사망하자 요르요스 2세는 1월 29일 코리지스를 총리로 임명했다. 엘리니키 위키백과에 따르면 메탁사스 측근 인사들이 그의 임명을 밀었고, 국왕도 그가 메탁사스의 권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보았다. 새 정부는 취임 당일 성명에서 국왕의 지도 아래 전쟁 승리와 노동계급의 이익을 함께 내걸었다. 코리지스는 총리와 함께 외무, 종교·교육, 군사·해군·항공 등 전임자가 맡았던 장관직을 그대로 겸임했고, 각료 명단은 이후 몇 달 동안 바뀌지 않았다.

그가 물려받은 전쟁은 1940년 10월 28일 이탈리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그리스-이탈리아 전쟁이었다. 그리스군은 11월 중순 이탈리아군을 국경 안쪽에서 저지한 뒤 반격해 알바니아 영내로 밀어냈으나, 1941년 2월 전선이 고착되고 3월의 이탈리아 봄 공세도 격퇴되었다. 이 시점에 그리스는 병력과 물자 보충 능력에서 이탈리아에 크게 뒤졌고 탄약과 보급이 위험할 정도로 부족했다.

코리지스가 택한 노선은 영국과의 동맹이었다. 엘리니키 위키백과는 그가 4월 6일 독일 대사 에르바흐-자인베르크가 독일의 침공 개시 직후 전한, 영국군을 그리스에서 철수시키라는 요구를 거부했다고 기록한다. 다른 서술은 그에게 다른 무게를 둔다. 전임 메탁사스는 영국군의 직접 지원이 독일 개입의 구실이 될 수 있다며 거절했지만,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코리지스는 보병 2개 사단과 기갑여단 규모의 영국·영연방군, 이른바 W부대의 파견을 받아들였다. 그리스는 이 선택으로 전쟁 수행을 연합국과 묶었고, 정부는 국왕이 실질적으로 통제했다. 같은 영문 서술은 그를 거의 무력한 존재로 본다.

4월 18일, 독일군의 침공 12일째에 코리지스는 각료회의에 참석한 뒤 요르요스 2세와 단둘이 면담했다. 두 사람이 무엇을 주고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정부를 크레타나 영국령 키프로스로 옮겨 항전을 계속할지를 두고 이견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엘리니키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는 면담 뒤 몹시 낙담한 모습으로 총리 관저로 돌아갔고, 국왕이 보낸 요안니스 디아코스가 관저에서 그의 아내와 이야기하던 중 2층에서 총성이 들렸다. 자살로 기록된 이 죽음의 구체적 정황은 서술마다 다르며, 영문 위키백과는 당시 크레타에 있던 시어도어 스테파니데스의 증언을 따라 신문들이 처음에는 사인을 심장마비로 보도했다고 전한다. 그리스는 그가 죽은 이틀 뒤인 4월 20일 독일군에 항복했고, 연합국과 묶인 전쟁 수행은 그리스의 독일·이탈리아·불가리아 점령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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