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교황」이라 불린 바이마르 시대 베를린의 연극 비평가
1867년 브레슬라우의 유대인 포도주 상인 집안에서 알프레트 켐프너로 태어났고, 1909년 케르를 공식 성으로 삼았다. 자연주의부터 1933년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독일 연극 비평가로 「문화 교황」이라 불렸으며, 비평을 독자적인 예술 형식으로 여겼다. 일찍부터 나치당을 공개적으로 공격했고, 1933년 2월 프라하로 피신했다. 5월 분서에서 「불의 구호」는 「독일어를 거만하게 망가뜨리는 것에 반대하여」 그의 저작을 불길에 넘겼고, 8월 국적을 박탈당했다. 1935년 런던에 자리 잡아 가난 속에 지내며 1941~1946년 망명 독일 펜클럽 회장을 지냈고, 1947년 영국 국적을 얻었다. 1948년 함부르크에서 뇌졸중을 겪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른 이름: 알프레트 켐프너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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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1948
독립 활동대표
문학·예술
경력 연표
- 1891케르라는 이름으로 연극 비평 기고 시작
- 1894할레 대학 철학 박사
- 1900–1919《데어 타크》 연극 비평가
- 1909케르를 공식 성으로 삼음
- 1912–1915예술·문학지 《판》 단독 발행인
- 1919–1933《베를리너 타게블라트》·《프랑크푸르터 차이퉁》 기고
- 1933.02.15프라하로 피신
- 1933.08독일 국적 박탈
- 1935런던 정착
- 1938자유독일문화연맹 공동 창립
- 1941–1946망명 독일 펜클럽 회장
- 1947영국 국적 취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