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 마티센

Alo Mattiisen
소련 에스토니아 1961–1996 ○ 심장마비

「노래혁명」의 사운드트랙을 쓴 작곡가, 다섯 조국의 노래로 에스토니아 대중을 하나로 묶었다

밴드의 연주를 멈추고 30만 군중 앞에서 맨손으로 합창을 지휘하며 '나는 에스토니아인이고 에스토니아인으로 남을 것이다'를 불렀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이자 음악가로, 1980년대 후반 노래혁명 시기 독립 열망을 노래한 〈다섯 조국의 노래〉 연작으로 대중의 감정적 결집을 이끌었다. 1987년 인광석 채굴 반대 운동에 연대해 만든 〈어느 땅도 홀로 있지 않다〉는 노래혁명의 서곡이 되었고, 이듬해 5월 타르투 팝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다섯 곡은 이듬해 9월 30만 명이 모인 〈에스티마 라울〉 공연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1996년 35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200여 곡을 남겼지만, 역사는 그를 무엇보다 독립운동의 작곡가로 기억한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인 스페에서의 활동과 음악 경력

마티센은 1983년 에르키스벤 튀르의 뒤를 이어 진보 록 앙상블 인 스페에 합류했다. 건반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1993년까지 활동하면서, 노래혁명기의 애국·항의 노래로 알려지기 전부터 에스토니아의 실험적 대중음악 현장에 참여했다. 그는 앙상블 활동과 함께 요엘라흐트메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에스토니아 라디오와 레클라마텔레비시오니에서 음악 편집자로 일했으며, 이후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했다. 1984년 탈린 국립음악원에서 음악교육학을 전공해 졸업했고, 1988년에는 에이노 탐베르그 교수 아래 작곡 과정을 마쳤다. 거의 200곡에 이르는 작품에는 대중가요뿐 아니라 두 편의 오라토리오, 두 편의 뮤지컬, 단막 오페라와 칸타타, 관현악·합창·기악곡, 연극·텔레비전 음악, 영화음악과 전자음악이 포함된다. 그의 보컬 작품 다수는 동급생이자 시인인 유리 레스멘트의 글에 곡을 붙였으며, 여러 가수와 인 스페·야에아에르 앙상블이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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