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 알렉산드로비치 에사울로프

Анатол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Эсаулов
소련 러시아 1905–1954 ○ 자연사

예조프를 심문한 수사관: 기구가 제 주인을 삼킬 때 조서를 쓴 손

1939년, 어제까지 온 나라가 이름만으로 떨던 '피의 난쟁이' 예조프가 심문 조서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조서를 쓰는 손은 에사울로프의 것이었다.

베리야의 수사선에서 몰락한 예조프의 자백을 받아내며 두각을 드러낸 NKVD 수사관. 뱌트카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10세에 고아가 되어 일터로 나갔고, 로도스와 함께 베리야의 '특별 임무'를 수행했으며, MGB 특별협의회 서기국장까지 올랐으나 1954년 자연사하여 흐루쇼프 시기 심판대에 서지 않았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39년, 예조프를 심문한 사내

1939년 4월 10일, 대숙청의 얼굴이었던 니콜라이 예조프가 체포되었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NKVD를 이끌며 수십만 명의 운명을 결정했던 '피의 난쟁이'는 이제 자신이 레포르토보 감옥의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 예조프의 수사는 NKVD 수사부에서 맡았고, 핵심 심문관 중 한 명이 바로 고리키 지역에서 올라온 지 2년 남짓한 서른넷의 수사관 아나톨리 에사울로프였다.

1939년 8월 4일자 심문 조서에 에사울로프의 서명이 남아 있다. 예조프는 이 심문에서 1937~38년 '대중 작전'이 반소비에트 음모의 도구였다는 혐의를 인정했고, 전 NKVD 수장은 결국 1940년 2월 4일 총살되었다. 에사울로프는 이 사건으로 두각을 드러내 곧바로 NKVD 수사부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이듬해 2월에는 GUGB 수사부장 자리에 올랐다.

에사울로프는 예조프 사건 외에도 보리스 로도스 등과 함께 베리야의 지시로 주요 정치범 심문에 참여했다. 후일 흐루쇼프의 1956년 비밀연설에서 NKVD 수사부의 고문 실태가 폭로되었을 때 로도스는 실명 거론되었지만, 에사울로프는 1954년 자연사로 생을 마감하여 소련 사법의 심판대에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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