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해체기에 당의 연속성을 지키려 한 벨로루시아의 조직가
1991년 쿠데타 패배 뒤 그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결성을 “당에 대한 범죄”라고 불렀다.
아나톨리 말로페예프는 노동자 출신으로 당 조직을 거쳐 벨로루시아의 공화국 지도부에 오른 소비에트·벨로루시아 정치가였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 말기에 지역 행정 경험과 연방 중심의 당 노선을 바탕으로 공산당을 이끌었고, 1991년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지지했다. 쿠데타 패배 뒤에도 당 조직의 재건을 모색했으며, 이후 독립 벨로루시아의 의회 정치에서 활동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90–1991 정치·당 지도 · 소련
경력 연표
- 1933고멜 출생
- 1949–1952고멜·민스크 차량수리공장에서 기계공
- 1952–1956소비에트 해군 복무
- 1962–1975고멜·모지리 당 조직에서 근무, 모지리 시당 제1서기와 고멜주 당위원회 서기
- 1978–1985고멜주 집행위원회 위원장, 벨로루시아 공산당 고멜주위원회 제1서기
- 1985–1990벨로루시아 공산당 민스크주위원회 제1서기
- 1990–1991벨로루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 1996–2000벨로루시아 공화국 국민의회 하원 초대 의장
소련 정치국
- 정위원 1990.12–1991.08
1991.11 당 활동 금지까지 재임
관련 역사 사건
당 금지 이후: 독립 벨로루시아의 국가기구와 의회
1991년 8월 쿠데타가 실패하고 벨로루시아에서 공산당 활동이 정지된 뒤, 말로페예프는 당기구를 떠나 행정 실무로 옮겨갔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그는 벨로루시아 각료회의 산하 국가물자비축총국 차장을 지냈다. 동시에 그는 1993년 4월까지 당 중앙위원회 지도자로서 해산된 조직의 잔존 명맥을 유지했고, 벨로루시아 공산당이 벨로루시아 공산당원당에 합류하는 과정을 거쳤다.
1995년 그는 제12대 최고회의 의원이 되어 경제정책·개혁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 시기는 루카셴코 대통령과 야권 다수파 최고회의가 충돌한 1995~1996년 헌정 위기의 시기였다. 1996년 11월 24일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측 개헌안이 통과되었고, 그 결과 새 헌법 아래에서 하원인 대표원이 구성되었다. 같은 해 11월 28일 대표원 제1차 비정기회의에서 말로페예프는 찬성 84표, 반대 17표로 의장에 선출되어 1996년 11월 30일부터 2000년 11월 21일까지 재임했다. 이 의회는 루카셴코 충성파만으로 구성되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새 헌법을 거부한 최고회의 의원 약 60명은 해산되지 않은 채 남아 국제사회로부터 정당한 의회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그의 의장직은 독립 벨로루시아 의회주의의 출발점인 동시에 권력 집중 과정의 산물이라는 상반된 성격을 지닌다.
의장으로서 그는 직권상 벨로루시아·러시아 연합 의회의회 제1부의장을 겸했고, 이후 부의장을 지냈다. 2000년 10월 제2대 대표원 의원에 선출되었고, 같은 해 11월 24일에는 독립국가연합 문제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재임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고멜주를 대표하여 상원인 공화국평의회 의원으로서 지역정책·지방자치 상임위원회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