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미르』의 비평가에서 반체제 운동의 상징이 된 아브람 테르츠
1966년 2월 재판에서 시냡스키는 무죄를 주장했다 — 소비에트 정치 재판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역사가 프레드 콜먼은 이 재판을 "현대 소비에트 반체제 운동의 탄생"이라 불렀다.
소비에트 문학학자, 비평가, 작가. 필로로기야 학위 후보(1952년)로,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 연구원 및 모스크바 국립대·예술극장 학교 강사였다.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의 『노비 미르』에서 주요 비평가로 활약했으며, 당시 가장 자유주의적인 소비에트 합법 출판물이었다. 아브람 테르츠 필명으로 서방에 풍자 소설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1959)를 발표했다. 1966년 율리 다니엘과 함께 순수 창작물로만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소비에트 작가가 되었고, 이 재판은 근대 소비에트 반체제 운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6년간 수용소 복역 후 1973년 프랑스로 망명, 소르본에서 러시아 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신탁시스』를 창간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9모스크바 국립대 문헌학부 졸업
- 1952필로로기야 학위 후보 취득; IMLI 연구원
- 1955–1965아브람 테르츠 필명으로 서방에 소설·에세이 발표
- 1950년대 말–1965『노비 미르』 주요 문학비평가
- 1960소비에트 작가동맹 가입
- 1966반소비에트 선동 혐의로 7년형 선고; 두브라블라크 수감
- 1971조기 석방
- 1973–1997소르본 대학 러시아 문학 교수; 『신탁시스』 공동 창간
관련 역사 사건
파리 망명과 『신탁시스』 창간
1971년 6월 8일 사면으로 풀려난 시냡스키는 1973년 클로드 프리우 교수의 초청으로 프랑스로 가서 파리 4대학(소르본)의 러시아 문학 교수로 재직했고, 러시아어 저널 『신탁시스』를 아내 마리야 로자노바와 함께 창간했다. 수용소 시절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로 엮은 「합창단의 목소리」와 「푸슈킨과의 산책」, 「고골의 그늘」 같은 작품들이 잇달아 서방에서 출간되었고, 강의를 바탕으로 한 『로자노프의 「떨어진 잎들」』(1982), 민간 신앙을 다룬 『이반 바보』(1991), 자전적 소설 『잘 자요』(1983)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그의 산문 대부분은 여전히 아브람 테르츠라는 필명으로 나왔지만, 문학 연구와 평론은 본명으로 발표하는 이원적 집필 방식이 굳어졌다.
망명지에서 시냡스키는 소련 문학과 문화를 되돌아보는 저작에 집중하는 한편, 망명 사회 내부의 권위주의적 경향과도 충돌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망명 지식인 사회의 지도자로 군림하며 “새로운 단일사상”을 세우려 한다고 비판했고, 그에 대한 솔제니친의 반격으로 망명 잡지들이 테르츠의 글을 싣지 않게 되자 아내 마리야 로자노바의 발의로 『신탁시스』가 창간되었다. 이 잡지는 반체제 망명 문학의 복수적 목소리를 담는 장이 되었고, 창간호들은 알렉산드르 긴즈부르크에게 바쳐졌다. 시냡스키는 1996년 심장마비와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1997년 2월 25일 파리 근교 퐁트네오로즈에서 사망했다. 그보다 앞서 1991년 10월 17일, 『이즈베스티야』는 시냡스키와 다니엘을 비롯한 인물들에 대한 사면·재심 결정을 보도했는데, 이는 소련 해체 두 달 전이었다.